사도세자가 잠든 융건릉의 관리사무소는 과거 ‘능참봉’에 불과한 것인가?

2025-06-05     CPN문화재TV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문화유산 행정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매년 융건릉 관리사업소에서는 능 행차의 마지막 과정으로 사도세자의 융릉과 건릉에서의 참배를 끝으로 바로 능 행차를 마친다. 그러나 이는 역사의 완벽한 왜곡이다.

 

혜경궁 홍씨와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참배한 후 왕찰인 용주사에서 사도세자를 추존하고 극락왕생을 발원했던 대규모 제행을 봉행했다는 기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마지막 과정을 생략한 채 흥미 위주의 행사로 마무지 짓는다. 그런 왜곡된 행사는 정조의 효 사상을 오롯이 담아내지 못하고 효의 본심까지 왜곡시키고 있다.

 

국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현실이며, 문헌(원행을묘정리의궤 등) 어디에도 있지 않은 방식으로 능 행차를 재현하는 것이다. 또한 바르지 않은 행사를 각 지자체가 나눠서 각 도시별 정체성으로 내세우면서 무형유산으로 추진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문화유산을 올곧게 전승해야 할 국가유산청이 우리의 역사와 유산을 바라보는 자세로 읽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융능 전경(사진=인터넷)

 

능 행차의 가장 중요한 제행은 당연 왕찰로서 용주사의 역할에서 그 중심을 찾아야 할 것이다. 기록에도 있는 용주사가 고려 왕실의 중요 사찰이었던 갈량사 위에 정조대왕의 어명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왜곡시키는 행위다. 문헌적으로도 고려 시대 때부터 중요한 왕실의 사찰을 정조대왕이 몰랐을 리가 없고, 그 위에 다시 왕명으로 용주사라 명명된 엄연한 왕실의 사찰이었던 용주사가 지금처럼 백안시(白眼視) 된 적은 없었다.

 

나라가 각종 환란, 일제 감정기와 6ㆍ25 사변을 거치는 동안 여러 군데가 훼손되고 문헌적 기록이 흩어졌다고 하더라도, 수원 화성을 복원하는 열정으로 용주사에 관심을 가졌다면 이런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터이다.

 

‘효 박물관’이라고 지어놓은 우중충한 시멘트 건물부터 예 용주사 토지는 무분별한 건축물로 도배되어 있고 사찰은 흙먼지가 날리던 장소를 겨우 포장한 주차장, 일주문은 어느 사찰의 일주문보다도 초라한 형태로 복원을 말할 것도 없는 사격에도 맞지 않는다. 사찰을 막아서고 있는 성냥갑 같은 건물 군단은 그렇더라도 이곳이 과연 문화유적지가 맞을까 싶은 용주사의 외곽은 처량해 보이기까지 하다.

 

물론 과거 스님들이 행정을 모르고 수행에만 열중한 덕이며, 도시도 새로이 우후죽순 생기다 보니 담당 공무원들도 의식이 없었겠지만, 지금이라도 이를 반듯하게 고쳐 새로운 가치관의 시대 역사와 문화를 토양으로 용주사가 그 위상에 맞는 격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특히 국가유산청의 깊은 관심이 요구된다. 지역 중심으로 연구하는 능 행차 재현행사를 정확한 역사의 고증을 통한 능 행차와 제행으로 만들어야 한다. 용주사 중심으로 재현되어야 정조대왕의 효 정신이 온전히 완성될 것이며, 후손들에게도 올바른 역사와 효의 가치가 전승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회이념으로 대한민국을 하나로 통합해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조대왕의 효 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수원은 수원대로 화성시는 화성시대로 각각 흩어지고 국가유산청이 관리하는 융건릉은 그들대로 행사를 자기 입맛대로 추진하는 지금의 오합지졸 현상을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