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입수 국가유산청 모니터링 매뉴얼 ‘예술성’ 배제된 기계적 수치뿐

2026-02-12     이민규

- [시민 목소리] “이게 정말 보물 맞나요?” 관광객들도 외면하는 방치된 현장

- 딛는 곳마다 '덜컥', 내려앉은 불단 뒤편... 스님 "언제 자빠질지 몰라"

 

■ "부처님 뒤가 다 내려앉았어요" 목숨 걸고 기도하는 법당

 

법당을 지키는 스님의 안내를 따라 부처님 뒤편으로 향하자 상황은 더 심각했다. 바닥면이 수평을 잃고 한쪽으로 눈에 띄게 기울어 있었다.

 

"일단 안에 들어오면 안정감이 없잖아요. 발밑이 덜거덕거리고 울렁거린다고 해야 하나. 사실 부처님 뒤쪽 마루를 보면 이미 다 내려앉았어요. 저거 당장 자빠지게 생겼다니까요. 기도하러 들어온 사람들도 불안해해요. 이게 보물인데, 지금 당장 안전 문제부터 터지게 생겼어요.“

 

스님의 목소리엔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지붕을 받쳐주는 구조물 역시 육안으로 확인될 만큼 내려앉아 있었다. 건물을 지탱하는 뼈대가 뒤틀리고 있는데도, 벽면의 벽화들은 보존은커녕 가루가 되어 '날아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부처님을 지탱하는 마루가 내려앉은 상황 (사진=cpn문화유산)

 

■ A~E’ 등급 놀이에 갇힌 매뉴얼, 예술의 가치는 어디에?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 정기조사 및 모니터링 지침’을 분석한 결과, 왜 이런 방치가 발생하는지 알 수 있다. 현재의 모니터링 시스템은 훼손 상태를 등급별(A~E)로 나누고 있지만, 그 기준이 지나치게 '건축물의 구조적 안전'에만 온 신경이 쏠려 있다.

벽화의 안료가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박락 현상은 건물 전체의 붕괴 위험을 당장 초래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행정 데이터상으로 관룡사 약사전은 '아직 견딜만한' 수준으로 분류된다.

즉, 보물의 예술적 가치가 완전히 소멸되어도 건물이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정상 모니터링’ 범위에 머물 수 있다는 맹점이 있다. 이 기계적인 모니터링 지표를 근거로 삼는 것 자체가 사실상 ‘사고가 터져야’ 예산이 내려오는 구조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사진=cpn문화유산)

 

■ "이게 정말 보물인가요?" 대중의 외면

 

이날 관룡사를 찾은 관광객들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보물이라는 안내판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그림은 다 지워져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예요. 국가에서 관리한다면서 이렇게까지 놔둬도 되는 건가요?”

 

문화유산에 큰 관심이 없는 대중이라도 육안으로 확인되는 '처참함'은 속일 수 없다. 사찰에 방문 한 관람객들은 입을 모아 “방치된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사진=cpn문화유산)

 

■ 책상 위의 데이터보다 현장의 비명에 응답하라

 

보물 제146호 창녕 관룡사 약사전. 이곳은 지금 행정의 사각지대에서 천천히 사라지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이제 책상 위에서 등급 숫자를 만지는 ‘통계 놀이’를 멈춰야 한다. 현장의 비명에 응답하지 않는 매뉴얼은 종이 낭비일 뿐이다. 관룡사의 벽화가 형체 없는 돌벽으로 남기 전에,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무의미한 숫자를 세는 모니터링이 아니라, 즉각적인 보수 조치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날아간 벽화 (사진=cpn문화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