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용인 백령사의 재발견 ①] 무너져가던 인법당에서 ‘보궁’이 되기까지 백령사 10년의 비원(悲願)
- 11군데 누수 속 바가지 받쳐 들고 버틴 10년의 세월 - 주동균 대목장 손길 거친 ‘칠량집’ 근래 보기 드문 전통 건축의 정수
[CPN문화유산] 한 사찰의 역사는 때로 한 인간의 삶만큼이나 극적이다. 용인의 주산(主山)이자 진산인 석성산 자락, 등산객들의 거친 숨소리 사이로 고즈넉이 자리 잡은 백령사(주지 돈각스님)가 그렇다.
빗물 새던 바가지와 와송이 갉아먹은 천장 눈물의 10년
시간을 2013년으로 돌려본다. 당시 백령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이 아닌, 예전에 용인이씨 문중사찰로 현재 등산로 주차장 근처에 주 법당과 요사채가 자리했었고, 현 백령사 요사채는 고시원을 운영하였으며, 현 법당자리에는 그들이 기도할 수 있는 작은 인법당이 위치했었습니다.
“처음 여기 와서 불상을 모신 법당을 보는데, 기가 막힙니다. 돌 틈은 사방으로 벌어져 있고, 비만 오면 여러 군데에서 빗물이 샜어요. 법당바닥에 양동이를 받쳐놓고 살아야 했습니다.”
백령사 주지 돈각스님의 회고다. 약 60년 전, 경남 합천의 오래된 고택을 해체해 가져온 목재로 지어졌다는 이 인법당은 오랜 세월 관리의 손길을 받지 못했다. 우거진 숲속에서 떨어진 나뭇잎들이 기와 사이에 쌓이고 썩어가며 ‘와송(기와에 자라는 소나무)’이 뿌리를 내렸다.
변화의 계기는 2014년 6월에 찾아왔다. 백령사 일대의 부지를 인수했던 한 독지가가 사찰을 돈각스님에게 희사(기부)했고, 스님은 이를 사유화하지 않고 즉시 대한불교조계종에 재산 일체를 증여했다. 문중 사찰이라는 제한된 틀을 벗어나 정식 대중 사찰로서 법통을 세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법당을 새로 지어야 한다는 비원(悲願) 앞에는 늘 ‘자금 부족’이라는 현실의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성보와의 인연으로 국고 보조 사업의 지원까지
벼랑 끝에 몰린 백령사를 구원한 것은 다름 아닌 사찰이 품고 있던 성보문화유산이었다. 도량의 절박한 처지와 스님의 지극한 기도가 닿았는지, 백령사가 보유한 성보의 독보적인 역사·학술적 가치가 학계의 고증을 통해 드러나면서 현재 국가지정문화재 1점과 경기도유형문화재 3점을 지정 보유하게 되었다.
보물 지정은 단순한 명예에 그치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국고 보조 사업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고, 2023년 지원사업을 받아 법당불사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비가 새면 양동이로 물을 퍼내던 산사가, 국가가 보호하는 성보 도량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주동균 대목장의 고집 현대에서 사라진 ‘칠량집’으로 깨어나다
작년까지만 해도 뿌연 분진과 공사 가림막에 가려져 있던 백령사의 새 법당은 최근 그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여타 현대 사찰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압도적인 고가(高架)와 개방감이 독자를 맞이한다.
설계 당시에는 일반적인 ‘외오포, 내칠포(지붕을 받치는 공포의 격식)’ 구조로 기획되었으나, 백령사는 정공법을 택했다. 안쪽 오량(다섯 개의 도리) 위에 한 칸을 더 얹어 공력이 배로 드는 ‘내칠량(七梁)집’으로 격상시켜 지은 것이다. 근래에 이 정도 규모의 칠량 구조를 구현하는 사찰은 드물다.
이 불사를 가능케 한 것은 상향고건축 주동균 대목장이었다. 자재 역시 예사롭지 않다. 주 대목장이 장장 10년 동안 정성껏 말린 양질의 목재만을 선별해 건축에 사용했다.
새로 지은 법당들이 세월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가 터지고 마루에서 송진이 배어 나와 애를 먹는 것과 달리, 이 법당의 목재들은 미동조차 없다. 서까래와 추녀(부연)의 길이를 일반적인 기준보다 무려 ‘10cm’나 더 길게 빼내어 지붕의 곡선미를 극대화했다. 평수는 40평이 채 되지 않지만, 시각적으로는 대도량의 대웅전 못지않은 웅장함을 뿜어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보궁’의 시대를 향해
백령사의 새 법당 내부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커다란 대웅전 불상이 없다. 이곳은 불상 대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寂滅寶宮)’이기 때문이다. 옛 법당에 있던 부처님을 한편에 그대로 모신 채, 중앙에는 정교하게 조성된 부처님 진신사리탑이 있다.
돈각스님은 “지금 법당 내부에 모신 목조사리탑을 향후 적절한 시기가 오면 양산 통도사나 오대산 적멸보궁처럼, 법당 밖 마당에 웅장한 ‘원통형 석조 진신사리탑’을 건립해 사찰 외부로 온전히 모실 계획”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현재 법당 한편에서는 ‘목불(木佛) 신중탱화’가 장인의 손끝에서 조성 중이다.
양동이로 빗물을 받던 척박한 땅에서, 국가 보물을 품고 전통 건축의 정수를 실현한 백령사의 지난 10년은 그 자체로 하나의 불교 서사시였다. 그러나 백령사의 계획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참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전통사찰 지정’이라는 더 큰 산이 스님과 신도들 앞에 남아있다.
(※ 기자 주: 본 기사는 용인 백령사 주지 돈각스님과의 심층 인터뷰 및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작성된 기획 시리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