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백령사의 재발견] 백령사 법당 해체 과정서 ‘병오년 상량문’ 발견 전통사찰 지정을 위한 새 열쇠

2026-06-16     이민규 기자

- 인구 110만 대도시에 전통사찰은 단 4곳 서류 심사에서 두 차례 고배

- 해체 과정서 확인된 ‘병오년 상량문’과 보관 중인 목재 백령사의 진짜 역사 증명할 열쇠

 

사찰의 역사적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지위, 그것이 바로 ‘전통사찰’이다. 전통사찰로 지정되면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보호가 이루어지지만, 그 문턱을 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인구 110만 명의 대도시 용인에 전통사찰이 단 4곳에 불과한 현실 속에서, 백령사가 가진 역사적 가치와 앞으로의 과제를 짚어본다.

 

백령사 (제작=돈각스님)

 

두 번의 도전과 서류 심사에서 밀려난 현실

 

“우리 백령사는 자리한 석성산은 용인의 성산으로 예로부터 기우재를 모시던 신위가 모셔져있고, 성곽과 봉화대가 있어 지리적,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습니다. 석성산의 옛 이름인 보개산(寶蓋山)의 보개(탑 꼭대기의 보륜 덮개 부분)는 불교용어에서 따온 말로 불교와의 인연도 깊다고 할 수 있죠. 특히 물이 좋아 방문객이 많았고, 현대판 허준으로 불리었던 박해복 한의사는 석성산의 물을 길어다 한약을 달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역사적, 위치적, 문화적 측면에서 당연히 전통사찰로 지정되어 가치를 인정받아야 마땅하지만, 신청 서류를 올릴 때마다 밀렸습니다. 두 번을 올렸는데 두 번 다 밀려버렸지요.”

 

백령사는 이미 인구 110만 특례시인 용인 내에서 단독 사찰로는 유일하게 국가 지정 ‘보물’을 보유한 곳이다. 경기도 유형문화유산도 3점이나 갖고 있어, 관내 종단 사찰 중에서는 가장 많은 문화유산을 수호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사찰 자체를 전통사찰로 등록하는 과정에서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아쉬움을 겪었다.

 

“뜯어낸 목재를 그대로 보관하라” 상량문이 증명하는 반전의 역사

 

전통사찰 지정을 위해서는 역사적 가치를 입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최근 진행된 신축 법당 불사 과정과 최근 방문한 한 지역민의 회고를 통해 결정적인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빗물이 11군데나 새어 낡고 훼손된 옛 법당 건물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사찰의 나이를 증명할 결정적 유물인 ‘상량문(上樑文·건물을 지은 내력을 적은 글)’이 그대로 발견된 것이다. 그리고 1945년생이라는 지역민의 말에 의하면 당초 해체된 구 법당 건물은 약 60년 전 건축 당시 경남 합천의 해체한 고택의 목재를 사용하여 다시 지은 건물이라고 전했다. 즉 상량문에 기록된 병오년(1966년 재건축 당시)보다 더 오래되었고 깊은 역사적 가치를 품고 있다는 뜻이 된다.

 

주변에서도 “이 뜯은 목재를 그대로 보관해야 옛날의 내력을 인정받고 수리(복원)의 개념으로 넘어갈 수 있다”며 모두 그대로 보관할 것을 권고했다고 한다. 백령사는 해체한 옛 목재들을 버리지 않고 현재 별도의 공간에 하나하나 소중하게 보관 중이다.

 

백령사 적멸보궁 전경 (사진=cpn문화유산)

 

고부재 활용과 구 산신각 연계 백령사가 나아갈 최종 로드맵

 

백령사가 향후 전통사찰 지정을 통과하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와 대안은 명확하다. 현재 보관 중인 옛 법당의 목재들을 그대로 활용하여 향후 다른 건물을 새로 지어 올리는 것이다. 그래야만 옛 건물의 내력과 역사성을 완전히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핵심 열쇠가 존재한다. 현재 사찰 진입로 좌측 거대한 바위 위에 자리 잡은 ‘구 산신각(舊 山神閣)’이 있다. 이 건물은 이번에 뜯어낸 구 법당 건물보다도 훨씬 더 오래된 건축물로, 바위 위(거북바위)에 온전히 남아 백령사의 오랜 역사를 소리 없이 증명하고 있다.

 

결국 백령사가 향후 나아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보관 중인 옛 목재를 활용해 과거의 역사적 가치를 잇는 전각을 중창하고, ▲거북바위 위의 구 산신각이 가진 오랜 연혁을 발굴해 내는 것이다. 이제 행정의 장벽을 뛰어넘어 당당한 전통사찰로 공인받기 위한 백령사의 마지막 여정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