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청 산불 없이 '주의' 경보 올린 이례적 선제 조치 이유는?

2026-07-07     이민규

 

경북·울산 산불로 국가유산 위기경보가 '심각'까지 치솟았던 게 불과 넉 달 전, 4월 초 일이다. 그런데 지난 2일, 국가유산청이 다시 경보를 한 단계 올렸다. '관심'에서 '주의'로. 눈에 띄는 점은 이번엔 불도, 뉴스에 나올 만한 사고도 없었다는 점이다. 재난이 터지고 나서야 뒤늦게 대응하는 게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위험을 먼저 읽고 움직인 경보다. 이런 선제적 판단이 나온 배경을 들여다봤다.

 

허민 국가유산청장 주재 재난안전 대책회의 (사진=국가유산청)

 

경보 상향, 이유는 "부산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행사“

 

국가유산청은 지난 2일 정부대전청사에서 긴급 재난안전대책회의를 열었다. 회의 결과는 다음 날인 3일 발표됐다. 국가유산 재난 위기경보를 '관심'에서 '주의'로 올린다는 내용이었다.

 

배경은 오는 19일부터 29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린다. 이 회의를 전후한 6일부터 다음 달 5일까지를 '특별대책기간'으로 정하고, 전 직원을 비상 대응 체제에 넣었다. 재난안전상황실은 이미 24시간 돌아가고 있다. 회의가 열리기 열흘도 더 전에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춰둔 셈이다.

 

왜 이렇게까지? 38년 만의 첫 개최

 

한국이 1988년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한 뒤로 지금까지, 세계유산위원회를 국내에서 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번이 38년 만의 첫 개최다. 아시아에서는 태국 푸껫(1994년), 일본 교토(1998년), 중국 쑤저우(2004년)에 이어 네 번째다.

 

유네스코 사무총장, 21개 위원국 장·차관, 196개 협약국 대표단까지 합쳐 약 3천 명이 부산으로 온다. 한국은 2023년 11월 위원국으로 뽑혔고, 이번 회의에서는 의장국까지 맡는다. 세계유산 등재 여부와 보존 상태를 심의하는, 문화유산 분야에서는 가장 큰 국제 무대다.

 

말하자면 이번 위기경보 상향은 전국 현장의 경계심을 미리 세워둔 것으로 전 세계가 지켜보는 자리에서 한 치의 빈틈도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되는 세계유산위원회 홍보대사 지드래곤 (출처=저스피스 재단)

 

장마철이 국가유산에 매년 반복되는 위험이라는 증거

 

국제행사 부담만으로 설명하기엔 아쉬운 부분이 있다. 실제로 장마철이 국가유산에 얼마나 위협적인지 데이터를 확인해봤다.

 

국가유산청 집계로 2008년부터 2024년까지 국가 지정·등록유산의 재난 피해는 1,075건. 지자체가 국가유산청에 요청한 긴급 보수비도 매년 뛰고 있다. 2021년 19억 원이던 게 2022년 55억 원, 2023년에는 73억 원까지 늘었다. 2020년엔 역대 최장인 54일간 장마가 이어지면서, 최근 15년 중 두 번째로 풍수해 피해가 많았던 해로 기록됐다.

 

즉 국제행사가 없었어도 여름 장마철 자체가 문화유산에는 매년 반복되는 위험 시즌이라는 얘기다. 여기에 국제행사까지 겹쳤으니, 국가유산청 입장에서는 경보를 미리 올려두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수 있다.

 

특별대책기간 뒤에는 이미 상시적인 안전망이 있다.

 

이번 특별대책기간이 새로 급하게 짜낸 대책이 아니라, 오랫동안 쌓아온 안전관리 체계에 국제행사라는 변수에 대비한 조치로 보여진다. 장마·폭염·국제행사가 동시에 몰린 어려운 시기에도, 국가유산청이 흔들림 없이 대응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회의에서 "완벽하게 기획됐어도 상황 대처가 매끄럽지 못하면 노력이 빛을 잃을 수 있다"며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점검을 당부했다. 38년 만에 한국이 세계유산 외교 무대의 주인공이 되는 이번 7월, 국가유산청의 이런 선제적이고 꼼꼼한 대응이 성공적인 회의 개최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유산위원회 대비 11개 기관 훈련 (사진=국가유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