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찰 - 청도 대비사

2017-08-13     이경일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567년(신라 진흥왕 28) 신승(神僧)이 창건하였다. 여기서 신승은 승려의 이름이 아니라 능력이 뛰어난 승려를 뜻하는 말이다. 창건 당시에는 소작갑사(小鵲岬寺)라고 하였다.

창건에 얽힌 설화가 전한다. 557년 한 신승이 운문산에 들어와 현재의 금수동(金水洞) 북대암(北臺庵) 자리에 초암을 짓고 수도하였다. 3년이 지난 어느날 산과 계곡이 진동하여 새와 짐승들이 놀라 울었다.

신승은 이 때 이 산에 오령(五靈)이 살고 있음을 알고 7년에 걸쳐 5개의 사찰을 지었다. 산 중앙에는 대작갑사(大鵲岬寺), 동쪽에는 가슬갑사(嘉瑟岬寺), 남쪽에는 천문갑사(天門岬寺), 서쪽에는 소작갑사, 북쪽에는 소보갑사(所寶岬寺)를 각각 지었던 것이다. 이 중 천문갑사는 지금의 운문사(雲門寺)이다.

600년(진평왕 22) 원광(圓光)이 중창하고 절 이름을 대비갑사(大悲岬寺)로 바꿨으며, 신라 말 고려 초 후삼국이 다툴 때 다른 4개 사찰과 함께 불에 탔다. 고려 인종(재위: 1123∼1149) 때 원응국사(圓應國師) 학일(學一)이 중창하였다. 본래는 박곡리 마을 내에 있었으나 학일이 중창하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에 대웅전을 중수하였고, 1950년 6.25전쟁으로 불에 타자 금천면에서 성금을 모아 응교(應敎)가 재건하였다. 대비사라는 절 이름은 불교의 대자대비에서 유래한 말인데, 언제 대비갑사가 대비사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향로전·요사채가 있고, 산내 암자로 도솔암과 옥련암이 있다. 이 중 보물 제834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 1685년(숙종 11) 중건했다는 기록을 담은 문서가 전한다.

향로전은 대웅전 오른쪽에, 요사는 왼쪽에 있다. 유물로는 절 입구 동쪽 산기슭에 소요(逍遼) 태능(太能: 1562∼1649)과 취운(翠雲) 학린(學璘: 1575∼1651)의 부도를 비롯한 11기의 부도가 모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