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차, 그 ‘맛과 멋’으로 피어난 문화

2005-01-28     관리자























차의 전래에 대한 문헌상의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당에서 돌아
온 사신 대렴이 차종을 유입시켰다는 내용이다. 이 외에 정확한 문헌적 고증은 알 수 없으나, 전한(前漢)의 선제(B.C. 74-79제위)때
동약(童約, 무양에서 차를 사오는 일)이 언급되어 있어 차 마시는 풍습이 한나라 이전에 이미 상류계층에 보편화된 것으로 보여져,
우리나라 차의 시초는 고조선 때부터 시작되었음이 짐작된다.

한국, 중국, 일본 3국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의 차문화는 중국에서는 향을, 일본은 색을 중시한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맛과
멋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5000년 역사를 바탕으로 19세기에 초의선사가 역사로부터 면면히 이어져온 차문화를 살리면서,
그 정신을 정립하고 중국과 일본의 다도와 확연히 다른 세계를 구축시킨 것이다.


한국의 차는 오감으로 마신다고 한다. 찻물 끓는 소리를 귀로 담고, 향기를 느끼며, 다구와 차를 눈으로 즐기고, 차의 맛을
음미한다. 그리고 손으로 찻잔의 감촉을 느끼는 것이다. 차 한 잔으로 자신을 반성하고 심성체계를 발전시키는 ‘다선일미’의 정신이
그것이다.















▲ 기와로 복원된
다산초당
다산을 만난
초의선사




‘차를 즐겨 마시는 민족은 흥할 것이요, 술을 즐겨 마시는 민족은 망할 것이라...’ 이는 다산 정약용의 차에 대한 철학을
짐작하게끔 한다. 그는 한국 다도의 맛과 멋에서 피어낼 수 있는 그것은, 분명 술을 마시며 도출되는 행위와는 다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차를 마시는 자체의 행위만이 아닌, 차로 상징되는 심성체계의 발전을 도모하는 뜻이리라.
다산이 유배를 마친 1818년 9월, 다산초당을 떠나면서 차의 풍미 속에서
인연을 맺은 제자들과 18년 동안의 신의를 잊지 말자는 뜻의 ‘다신계’를 조직하였다. ‘사람이 귀하다는 것은 신의가 있기 때문이며,
한때 즐거워하다 흩어지면 곧장 잊어버리는 것은 짐승의 도’ 이기에, 신의를 지켜가자는 뜻으로 조직하게 된 것이다.

다산은 초당을 떠난 이후에도 강진의 제자들이 연명으로 지어서 보내주는 시와 차를 즐기며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다산은 18년의 고독한 강진 유배생활에서 따뜻이 위로가 된 그윽한 차 향기로 쇠약해진 몸과 마음을 다스렸다. 이때, 지인의 소개로
다성 초의선사와 만나게 되는데, 이 둘의 만남은 조선시대 다도의 틀을 형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초의는 다산을 만난 기쁨을 ‘하늘이
나를 맹자 어머니 곁에 있게 한다’고 표현하였는데, 다산과 함께 차의 ‘멋’ 속에서 유학과 시도를 나누는, 다담을 통한 학문탐구의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초의선사는 ‘동다송’에서 말하기를, 우리의 차나무는 원래 중국과
같지만 색과 향기와 효능과 맛에 일등공적이 있다고 하여 한국의 토양과 기후에서 자란 야생차의 우수성을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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