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선(東文選)』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등에 김부식이 저술한 「혜음사신창기(惠蔭寺新創記)」에는 혜음원의 창건배경과 운영의 주체, 왕실과의 관계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 문헌에는 혜음원이 개경(開京)과 남경(南京) 사이를 왕래하는 행인을 보호하고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창건되었으며, 예종 15년(1120) 2월에 공사를 시작해 예종 17년(1122) 2월에 완공된 것으로 전한다.
혜음원지는 1999년까지 그 위치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惠蔭院’이라 새겨진 암막새 기와가 수습됨에 따라 현재의 위치가 확인됐다. 문헌에 ‘혜음사(惠陰寺)’라고도 전하나, 문화재청은 출토 암막새의 글에 따라 ‘혜음원(惠蔭院)’으로 사적예고 했다.
파주시는 홈페이지에서 혜음원지가 남한지역에서 보기 어려운 고려 전기의 건축양식을 갖고 있으며, 국왕이 머물 수 있는 별원지와 원터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어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혜음원지는 문헌과 출토 유구․유물을
통해 원(院)의 구조와 형태, 운영실태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왕실, 귀족, 평민 등 각 계층의 생활양식을
전해주는 유적으로서 고려 전기 건축 및 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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