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흥사지 사리기, 백제사 다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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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흥사지 사리기, 백제사 다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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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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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0대 임금 연산군만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인물도






오늘 4월 6





 








 



 








왕흥사지서 출토된 백제 금ㆍ은ㆍ동 사리기







 







지난 2007년 10월 공개돼 관련학계의 큰 주목을 받은 부여 왕흥사 목탑터와 사리기에 대하여
국내외 관련학자들이 심도 있게 토론하는 학술대회(주제: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의 의미)가 마련됐다. 이와 함께
국립부여박물관에서 특별전 ‘백제 왕흥사’를 개최하여 사리장엄구를 발표현장에서 관찰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주최로 열리는 이번학술대회는 이기동 동국대교수의 기조강연을 필두로 발굴조사 성과에 대해 보고한 후 사리기,
사리공양품에 대하여 분석하고, 백제사․건축사적 의미를 살펴본 후, 복원 정비 문제까지도 다룰 예정이다.







 













▶ 공양품 추정 유물

 




▶ 석재뚜껑 개봉 후 사리함 노출 모습








 






사리용기(원통형 청동제사리합-은제사리호-금제사리병)는 발굴당시 큰 주목을 받았는데, 청동제사리합은 중국에 전래된 인도식 사리용기를
원형으로 삼아 6세기경 백제에서 특별히 제작된 것이다. 또한 금제사리병이 사용된 것은 국내에서 처음 확인된 것으로, 중국에서도
금제사리병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김연수 국립고궁박물관 전시홍보과장은 아직 유리용기를 제작하는 기술이 도입되지 않아
금제용기가 내사리기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심초석 사리공(사리함 봉안을 위해 판 구멍) 주변에서 출토된 일괄유물에 대해서는 진단구(액막이를
위해 여러 가지물건을 묻는 것)라는 견해도 있었으나 이번 발표에서는 사리장엄구와 공통되는 공양품으로 보는 것이 대세이다. 이한상
대전대학교 교수는 이 공양품은 절대연대를 가진 일괄 유물로 사비시기 백제문물의 편년작업에 중요한 기준자료가 될 것이며, 아울러
제작지 논란이 있었던 부여 능사 출토 백제금동대향로 등을 백제 장인들이 제작하지 못할 이유가 없음을 보여주는 수준 높은
금속공예기술이라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목탑과 사리기에 대해서는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논의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는데, 왕흥사 목탑 기단의 구축 기술 및 사리용기․장엄구 안치
형식을 살핀 일본 동북학원대학의 사가와 마사토시(佐川政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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