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초사지 당간지주 보물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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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초사지 당간지주 보물 제4호
  • 심연홍 기자
  • 승인 2020.02.25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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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한 천년의 세월

안양 예술공원에서 좌측으로 삼성천 다리 하나를 건너면 안양박물관과 김중업박물관이 한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곧바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는데 보물 제4호인 중초사지 당간지주와 도지정문화재인 중초사지 삼층석탑이다.

 

중초사지 당간지주를 살펴보자면, 당간지주란 사찰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 도구이다. 고대에 절에서 법회 등 행사가 있을 시에 부처와 보살의 공덕과 위신을 기리고자 하는 목적으로 사용하였다.

 

중초사지 당간지주(사진=CPN문화재TV 심연홍기자)
중초사지 당간지주(사진=CPN문화재TV 심연홍기자)

당(깃발)을 달아두는 장대(깃대)는 당간(幢竿)이며, 이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주는 두 개의 기둥이 당간지주(지주((幢竿支柱, 버팀돌)다. 중초사지 당간지주가 위치한 현재의 박물관은 900년대(고려 초)에는 안양사(安養寺)였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중초사(中初寺)였던 것으로 학계에서 추측한다.

 

안양시청 문화관광과(임동민)에 따르면 “ 중초사와 관련된 문헌자료는 존재하지 않으나, 1959년 이곳에 유유제약공장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는데, 그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이곳에 중초사라는 절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고 하였다. 이곳 당간지지주 이름 앞에 ‘중초사지’가 붙은 이유이다.

 

서쪽 당간지주의 바깥쪽에 해서체로 쓰인 명문(銘文)은 모두 6행 123자다. 여기에 중초사터였음을 알게 하는 기록과 당간지주 제작과 관련된 내용이 새겨져 있다. 신라 흥덕왕 1년(826) 8월 6일에 돌 고르기를 시작하여, 다음해인 827년(흥덕왕 2년) 2월 30일에 당간지주 제작을 끝냈다고 적혀있다.

 

중초사지당간지주(사진=CPN문화재TV 심연홍기자)
중초사지당간지주(사진=CPN문화재TV 심연홍기자)

 

이처럼 당간지주에 문자를 새겨 기록을 남기는 것은 매우 희귀한 경우이며, 중초사지 당간지주는 제작 연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당간지주로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아 보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중초사지 당간지주는 원래의 모습대로 85㎝ 간격을 두고서 동서로 서 있는 형태다. 거의 축조당시의 원위치라고 본다.  동서로 마주보고 서있는 지주 사이의 간격은 60cm이며 당간을 고정시키는 간구(구멍)가 위아래로 나란히 2쌍이 보인다.  동쪽 당간지주의 윗부분이 깨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8·15광복 후 인근 석수(石手)들이 석재로 반출하려 했던 흔적이라고 한다.

 

당간지주 뒷쪽으로 삼층석답이 보인다(사진=CPN문화재TV 심연홍기자)
당간지주 뒷쪽으로 삼층석답이 보인다(사진=CPN문화재TV 심연홍기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을 지나오며 본래의 원형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는 중초사지 당간지주의 모습에서 은은한 고대의 풍취가 묻어난다. 단아하면서도 고고한 자태로 천년의 세월을 굳건히 서 있는 중초사지 당간지주의 품격이 이후 천년동안,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안양 예술공원 박물관 내의 중초사지 삼층석탑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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