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억 - 기와
상태바
삶의 기억 - 기와
  • 이경일
  • 승인 2020.02.26 10: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계종의 작은 산사, 가평 대원사 출토 기와 2

조선시대의 암키와는 4례가 수집되었다. 암키와는 표면에 각각 2례씩인 우상문과 집선문이 새겨졌고 무문암키와가 있다. 우상문암키와는 전술한 우상문수키와와 같이 조선 전기에 제작된 와례로 중요시되었는데 현재 길이와 두께가 각각 8cm, 2.3cm가량인 작은 파손품이다. 또 다른 우상문암키와는 길이와 두께가 각각 18.5cm, 2.5cm인데, 굵은 우상문이 밀집된 상태이다.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간주되는데 이면에는 거친 포목흔적이 관찰된다.

우상문암키와
우상문암키와

집선문암키와는 표면에 집선이 간략하게 새겨졌다. 암키와는 현재 길이와 두께가 각각 18.5cm, 2.3cm가량인데 소성도가 높은 회흑색의 경질기와이다. 이면에 포목흔적이 있으며 내측에서 절단한 와도흔적도 있다. 또 다른 집선문암키와는 굵은 집선이 밀집되었는데 반파되었다. 회흑색의 경질기와로 길이와 두께가 각각 37cm, 2cm가량인데 이면에 포목흔적과 점토판의 재단흔적이 확인된다. 두 집선문암키와는 차이가 있으나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집선문암키와
집선문암키와

근대의 기와는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에 제작되었는데 약간에 지나지 않고 있다. 수키와는 3례가 수집되었다. 집선문수키와는 언강과 미구가 있는 회흑색의 경질기와로 거의 완전한 모습이다. 수키와의 길이와 지름 및 두께가 각각 31.5cm, 15cm, 2cm가량이다. 표면에 집선이 밀집되었는데 이면에 거친 포목흔적이 확인되어 조선말기인 근대의 기와로 간주되고 있다.

집선문수키와
집선문수키와

집선문수키와는 언강과 미구가 생략된 기와로 근대에 제작되었다. 조선시대의 수키와는 대부분 낮은 언강과 비교적 짧은 미구가 있는 유단식인데, 언강과 미구가 생략된 기와는 전통기와를 모방한 복원기와로 근현대에 약간씩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수키와의 길이와 지름 및 두께가 각각 28cm, 12.5cm, 1.5cm인데 이면에는 포목흔적이 생략되었다.

표면에 창해파문과 화엽이 새겨진 복합문수키와는 소성도가 높은 회흑색 경질기와로 언강과 미구가 있는 유단식이다. 그런데 이 수키와는 전술한 집선문수키와와 같이 전통기와를 모방한 복원기와로 근대에 제작된 것으로 간주된다. 수키와의 길이와 지름 및 두께가 각각 35cm, 14,5cm, 2cm가량으로 표면에 복합문이 밀집되었는데 이면에는 포목흔적이 생략되었다.

복합문수키와
복합문수키와

근대의 암키와는 1례가 수집되었다. 표면은 고판문이 약간씩 남아 있으나 대부분 지워져 무문이다. 회흑색의 경질기와로 현재 길이와 두께가 각각 23cm, 2.7cm인데 이면에 거친 포목흔적이 있다.

가평 대원사에서 출토한 기와는 기본기와인 암·수키와가 대부분으로, 조선시대의 기와와 근대의 기와로 구분되고 있다. 수키와는 언강과 미구가 있는 유단식으로 그 표면에 우상문과 집선문, 창해파문이 새겨졌고, 암키와는 수키와와 같이 소성도가 높은 회흑색의 경질기와로 표면에 우상문과 집선문이 새겨졌는데 이면에 포목흔적이 뚜렷하다. 그런데 대원사의 경내에서 수집된 조선시대의 기와는 전술한 바와 같이 조선 전기와 후기의 작례를 잘 나타냈는데, 그 문화재적 가치가 상당히 많은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근대의 기와는 조선말기와 일제강점기에 제작되었는데 약간에 지나지 않고 있다. 근대의 기와는 수키와의 표면에 집선문과 창해파문 및 화엽이 새겨진 복합문이 새겨졌고, 암키와는 그 표면이 조정되어 무문이다. 그런데 근대의 수키와는 전통기와를 모방한 복원기와로 그 이면에는 포목흔적이 생략되었다.

이와 같이 가평 대원사는 경내에서 출토한 조선시대와 근대에 해당하는 다양한 기와와 장대석 및 석등 옥개석 등을 통하여 1960년대의 창건이전에 사원건축이 이미 존재하여 그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소장유물가운데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58호로 지정되어 당시의 불교문화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사찰의 경내에는 약간의 건축부재와 함께 조선 전기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기와가 산재하여 전통사찰로 그 맥을 잇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