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영수사, 대웅전에 보관중인 영산회괘불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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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영수사, 대웅전에 보관중인 영산회괘불탱
  • 김민석 기자
  • 승인 2020.03.11 17: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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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영수사 대웅전 (사진 = CPN문화재TV)
진천 영수사 대웅전 (사진 = CPN문화재TV)

 

충북 진천군 두타산에 위치한 영수사는 918(고려 태조 원년)에 중국통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사찰이다. 생각보다 골이 깊은 오르기 힘든 곳에 위치해 있었다. 또한 산에서 사찰로 오르는 길이 두 갈래였고 한곳은 사유지로 향하는 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안내판이 없어 문화재를 관람하러 오는 사람들이 불편함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절에서 전해오는 중수기에 의하면 1624(조선 인조 2)에 벽암대사(碧巖大師)가 중건했으며, 고종 3년 이한(李韓)이 다시 수축하였다. 이후 수차례의 중건을 거치면서 유지되어 오다가 1947, 혜철 스님에 의해 중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영수사(靈水寺)라는 이름은 1937년 간행된 조선환여승람에 의하면 절 뒤편에 있는 영천(靈泉)이 있기 때문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영천은 만병통치약으로 유명하였고 한여름에도 얼음보다 차가웠다고 한다.

 

경내에는 정면 3, 측면 2, 겹처마 맺배지붕의 관음보전과 정면 3, 측면 3칸의 대웅전과 그 앞의 마당 좌우측에 콘크리트조의 관음보전과 숭방 건물이 있다.

진천 영수사 영산회 괘불탱 (사진  = CPN문화재TV)
진천 영수사 영산회 괘불탱 (사진 = CPN문화재TV)

 

현재 영수사에는 보물 1551호인 영산회괘불탱이 보관되어 있다. 이 괘불은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괘불로서 크기가 가로 579cm, 세로 835cm에 이르는 대형으로 국내에서 유일한 조선시대의 괘불탱화이다.

 

이 괘불은 1653년에 제작된 것으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제작되었다는 시기성, 청법자로 사리불이 등장하는 가장 빠른 괘불화라는 특징을 가지며 17세기 영산회상도 양식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동관 주지 스님에 의하면 후대로 오면서 부분적으로 보수를 하며 수리해왔다고 한다.

 

크기가 거대한 만큼 보관이 힘들어 평소에는 대웅전 내부에 보관함에 담아 보관하고 있다. 본래 백련사에서 이곳으로 옮길 때 쓰던 보관함은 너무 낡아서 새 보관함을 짜고 그곳에 보관중이다.

 

전통적으로 이러한 탱화는 법당의 뒤쪽에 매달고 아래에 받침대를 만들어 보관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괘불탱은 현재 법당 내부에 걸어 놓기에는 크기가 너무 큰 관계로 보관함에 담아 보관해 온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탱화를 보관할 경우 1년에 한두번은 펼쳐 놓는 것이 보존에 더 좋다고 주수완 동산문화재분과 문화재전문위원은 설명했다. 또한 단순한 불교의례용품이 아닌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보물이기 때문에 의례용으로는 모조화를 만들고 진품은 박물관 등에 보관해서 전시하거나 대웅전 내부에 보관할 수 있게 시설을 보충하는 것이 더 좋다고 주수완 동산문화재분과 문화재전문위원의 설명이 이어졌다.

 

현재 이 괘불탱은 석가탄신일 등의 크고 특별한 법회가 있을 때 간혹 밖에 내거는 식으로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고 있다. 다만 단순한 의례용품이 아닌 문화재이기 때문에 모조화를 만들어 보관하거나 대웅전 내부를 보수하고 사찰로 오는 길목에 관람객을 위한 안내판을 만드는 등의 작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취재팀 김민석 기자

kemenes@icp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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