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의 문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나? 화엄사 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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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의 문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나? 화엄사 문에 대하여
  • 김민석 기자
  • 승인 2020.03.24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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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천왕문(사진=CPN문화재TV)
화엄사 천왕문(사진=CPN문화재TV)

 

구례 화엄사(求禮 華嚴寺)는 백제 성왕 22년(544)에 창건되어 화엄종(華嚴宗)을 선양하였던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이다. 삼국시대의 승려 연기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절 이름은 《화엄경》의 ‘화엄’ 두 글자를 따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

 

신라시대 때는 선덕여왕 14년(645)에 자장이 증축하여 석존사리탑(釋尊舍利塔)·7층탑·석등롱(石燈籠) 등을 건조하였으며, 문무왕 17년(677)에는 의상대가 장육전(지금의 각황전)과 석등을 조성하고 《화엄경》을 보관하였다.

 

임진왜란 때 호남의 관문 구례 석주관에서 승병 300여 명을 조직하여 왜군에 맞서 싸웠으나 이 앙갚음으로 왜장 가등청정은 화엄사를 전소시켰다. 벽암선사(碧巖禪師)가 7년, 인조 8년(1630년)부터 14년(1636년)에 걸쳐 재건하였고, 이어 대웅전 · 각황전 · 보제루(普濟樓) 등이 차례로 복구되었다.

 

화엄사는 2009년 사적 제505호로 지정되었으며, 화엄사의 현존하는 모든 부속 건물은 모두 신라시대에 속하는 것으로서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국보로는 각황전, 각황전 앞 석등, 사사자삼층석탑, 영산회괘불탱이 있으며, 보물로는 동 오층석탑, 서 오층석탑, 대웅전, 원동턴 앞 사자탑, 화엄석경 등이 있다. 그 외에도 구례 화엄사 올벚나무와 구례 화엄사 매화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어 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진 사찰이다.

 

이 화엄사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구인 불이문을 지나고 금강문,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왕문을 가쳐야 한다.

 

불이문은 두 개의 큰 기둥이 커다란 기와지붕을 이고 있다 하여, 일주문이라고도 불린다. 불이문에 걸린 智異山華嚴寺(지리산화엄사) 편액에는 ‘皇明崇禎九年歲舍丙資仲秋義昌君珖書(황명숭정구년세사병자중추의창군광서)’라는 낙관 글씨가 있다. 선조의 여덟째 아들인 의창군이 쓴 것으로 당대에는 왕실 어른과 고관대작의 친필을 걸어 놓으면 향촌의 유지들이 함부로 들어와 행패를 부리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당대의 화엄사가 가진 위엄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편액이다.

 

화엄사 금강역사(사진=CPN문화재TV)
화엄사 금강역사(사진=CPN문화재TV)

 

금강문에는 금강역사(金剛力士) 및 문수(文殊)·보현(普賢)의 동자상(童子像)이 안치되어 있다. 금강역사는 사찰이나 불전의 문 또는 불상 등을 지키는 불교의 수호신이며, 인왕역사(仁王力士)라고도 한다. 이 신은 여래의 온갖 비밀된 사적(事迹)을 알고 5백 야차신(夜叉神)을 거느리면서 천불(千佛)의 법을 수호한다고 한다.

 

화엄사 사천왕(사진=CPN문화재TV)
화엄사 사천왕(사진=CPN문화재TV)

 

천왕문을 지키는 것은 ‘사천왕’으로 고대 인도의 높은 신들이었지만 부처님의 설법에 감화되어 불법 수호신이 된 자들이다. 지국천왕(持國天王), 다문천왕(多聞天王), 증장천왕(增長天王),  광목천왕(廣目天王) 이라고 하며, 각각 동서남북을 지키고 있다. 이들은 저마다 비파, 칼, 용과 여의주, 보탑과 당과 같은 물건을 들고 불법을 지키고 있다. 

 

이 세 문들은 아주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보물과 국보, 그리고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간직한 화엄사를 지켜주고 있다.

 

취재팀 김민석 기자

kimminseok@icp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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