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지킨 호국수(護國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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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지킨 호국수(護國樹)
  • 관리자
  • 승인 2009.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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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자나무는 대부분 한강이남 지방에서 자생하는데 원산지는 중국이다. 꽃은 5월에 잎보다 먼저 흰색으로 피고 잎겨드랑이에 달린다. 꽃자루가 없고 꽃받침조각과 꽃잎은 5개씩 떨어진다. 수술은 많고 1개의 씨방에 털이 빽빽이 난다. 보통 귤나무 보다 1개월 정도 먼저 꽃이 핀다. 열매는 장과로서 둥글고 노란색이며 9월에 익는데, 향기가 좋으나 먹지 못한다. 종자는 10여 개가 들어 있으며 달걀 모양이고 10월에 익는다.


탱자나무는 아무리 자라도 높이 3∼4m, 가지는 모두 능각이 지며 약간 납작하고 녹색이 특징이다. 가시가 있는데 길이 3∼5cm로서 굵고 어긋나 쉽사리 다가서기가 어렵다. 잎 또한 어긋나며 3장의 작은 잎이 나온 잎이고 잎자루에 날개가 있다. 잎은 타원형 또는 달걀을 거꾸로 세워놓은 모양이다. 잎은 혁질(革質:가죽 같은 질감)이고 길이 3∼6cm이다. 끝은 둔하거나 약간 들어가고 밑은 뾰족하며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열매는 건위·이뇨·거담·진통 등에 효능이 좋다. 나무는 산울타리로 쓰고 귤나무의 대목(臺木)으로도 쓴다.


이것이 탱자나무에 대한 식물학적, 백과사전적 의미이다. 조경수로도 잘 쓰이지 않으며, 특히 열매는 과실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 조경수 이전의 가치, 과실로서 무언가 부족한 탱자나무! 하지만 탱자나무가 나라를 지키는 호국수(護國樹)라는데 굵은 가시로 찔린 것처럼 뜨끔함을 느낀다.


『강화도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78호와 79호의 탱자나무는 외적의 침입을 저지할 목적으로 심은 것 중의 일부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라는 기록을 통해 고려의 역사, 그 우울한 단면을 알 수 있다.






▲ 강화 사기리 탱자나무


최강의 기마부대를 가지고 있던 몽골군을 피해 1232년(고려 고종 19) 고려는 도읍을 강화도로 옮긴다. 1206년 몽골이 건국한 후 금(金)나라가 쇠약한 틈을 타서 만주지역에서는 1216년에 대요수국(大遼收國), 1217년에 동진국(東眞國)이 건국되어 4국이 난립하는 상황이었다. 이때 몽골의 침입에 쫓긴 대요수국(거란족)이 2차에 걸쳐 고려를 침입하였다. 하지만 1218년 강동성(江東城)에서 여몽(麗蒙)연합군에 의해 격퇴되었다. 이를 계기로 몽골와 일방적인 형제관계의 협약을 맺게 된다. 그러나 무리한 공물을 요구함에 고려는 버티지 못하고 형제관계는 단절되고 만다. 더군다나 1225년 공물을 받아가던 몽골 사신 저고여(著古與)가 압록 강변에서 피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에 몽골은 1231년 살리타이(撤禮塔)를 앞세워 고려를 침공하였다.


이후 원(元)나라는 행정관 다루가치(達魯花赤)를 통해 통치에 준하는 내정간섭에 이르게 되었다. 이때 권신(權臣) 최우(崔瑀)는 단호히 항몽 투쟁을 결의하고, 1232년 6월 장기적인 항전을 위하여 강화도로 천도하게 된다.


이 때 강화성벽에 방어를 목적으로 심어둔 나무가 탱자나무였다. 굵은 가시가 최전선의 방어벽을 구축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조선의 인조 재위 시 또한 병자호란을 피해 강화로 피신한 인조의 안위를 지켜준 나무가 탱자나무다. 그러니 강화도 사기리 탱자나무는 호국수다. 사기리 탱자나무 국토방위의 역사적 유물이랄 수 있는 것이다.






탱자나무는 또한 죄인을 가두는 나무, 정권의 몰락과 더불어 왕과 왕족의 죽음을 알리는 나무, 위리안치의 주재료가 되는 나무였다. 귀향에는 죄질이 비교적 가벼워 고향에 보내는 본향안치가 있었고, 섬으로 보내는 절도안치가 있는가 하면, 사방을 가시 울타리로 막아 세상과 철저한 격리를 시켰던 위리안치(圍離安置)가 있다. 위리안치를 당하면 결국에는 대부분 죽임을 당하게 된다.


폭군 연산군은 강화 교동에서 최후를 맞는다. 교동까지 호위를 담당했던 호위장수 심순경의 기록을 살펴보면 “안치소에 가서는 너무 비좁아 해를 볼 수 없었다.” 라고 증언하고 있다. 또한 "작은 문이 겨우 하나 있어 그리로 음식을 통하였다." 하였으니 연산군은 탱자나무 울타리, 즉 가시나무 울타리 안에 위리안치 되어 그 최후를 맞았다. 가솔들과 함께 기거할 수 없는 극형 중에 극형, 탱자나무! 역사를 통해 탱자나무는 죄인으로서, 혹은 호국의 열망으로 우리 민족과 같이한 것이다.


나무로서의 그 기능은 부족한듯 하지만 그 끝을 알 수 없는 뾰족한 가시로 무언가의 깨달음을 만드는 탱자나무, 강화도에서 역사의 힘을 가진 탱자나무를 만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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