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국보 지정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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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국보 지정 예고
  • 정은진
  • 승인 2020.09.0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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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999호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사진=문화재청)
보물 제999호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사진=문화재청)

 

고려시대 고승의 실제 모습을 조각한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이 국보가 된다.

 

문화재청은 지난 2일 보물 제999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을 국보로 지정 예고한다고 밝혔다.

 

보물 제999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陜川 海印寺 乾漆希朗大師坐像)은 신라 말~고려 초까지 활동한 승려인 희랑대사(希朗大師)의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조각으로서, 고려 10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희랑대사는 화엄학에 조예가 깊었던 학승으로, 해인사의 희랑대에 머물며 수도에 정진했다고 한다. 정확한 생존시기는 미상이나 조선 후기 학자 유척기의 「유가야기(游加耶記)」에 따르면 949년 이전에 입적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사한 시기 중국과 일본에서는 고승의 모습을 조각한 조사상을 많이 제작했지만, 우리나라에는 유례가 거의 전하지 않으며 희랑대사좌상이 실제 생존했던 고승의 모습을 재현한 유일한 조각품이다.

 

희랑대사좌상은 조선 시대 문헌기록을 통해 해인사의 해행당(解行堂), 진상전(眞常殿), 조사전(祖師殿), 보장전(寶藏殿)을 거치며 수백 년 동안 해인사에 봉안(奉安)되었던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이덕무(李德懋, 1741~1793)가야산기(伽倻山記)등 조선 후기 학자들의 방문기록이 남아 있어 신빙성을 더해준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의 과학 조사 결과, 이 작품은 얼굴과 가슴, , 무릎 등 앞면은 삼배 등에 옻칠해 여러 번 둘러 형상을 만든 건칠(乾漆)이며, 등과 바닥은 나무를 조합해 제작됐다. 변형 없이 제작 당시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면과 뒷면을 결합한 방식은 보물 제1919봉화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처럼 신라고려 초에 해당하는 비교적 이른 시기의 불상조각에서 확인되는 제작기법으로 희랑대사좌상의 제작시기를 유추하는 데 참고가 된다.

 

문화재청은 건칠기법이 적용된 희랑대사좌상은 육체의 굴곡과 피부 표현 등이 매우 자연스러워 조선 후기에 조성된 신륵사 조사당 목조나옹화상’(神勒寺 祖師堂 木造懶翁和尙, 1636), ‘부석사 조사당 목조의상대사상(浮石寺 祖師堂 木造義湘大師像, 조선 후기)’, ‘괴산 각연사 유일대사상(槐山 覺淵寺 有一大師像, 조선 후기)’ 등 다른 조각상들과 달리 관념적이지 않고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인다. 마르고 아담한 등신대 체구, 인자한 눈빛과 미소가 엷게 퍼진 입술, 노쇠한 살갗 위로 드러난 골격 등은 매우 생동감이 넘쳐 생전(生前)의 모습을 연상하기에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문헌기록과 현존작이 모두 남아있는 조사상은 희랑대사좌상이 유일하다. 고려 초 10세기 우리나라 초상조각의 실체를 알려주는 매우 귀중한 작품이자, 희랑대사의 높은 정신세계를 조각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역사예술학술 가치가 탁월하다고 평가된다.

 

국보로 지정 예고된 보물 제999호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은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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