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대곡사 범종루' 등 3건 보물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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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대곡사 범종루' 등 3건 보물로 지정
  • 이경일
  • 승인 2021.03.23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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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대곡사 범종루 범종 (사진=문화재청)
의성 대곡사 범종루 범종 (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공주 갑사 대웅전(公州 甲寺 大雄殿),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의성 대곡사 범종루(義城 大谷寺 梵鍾樓),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순천 팔마비(順天 八馬碑)3건의 문화재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했다.

 

공주 갑사 대웅전은 정유재란 이후 갑사에서 가장 먼저 재건된 건축물 중 하나로 이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쳤고, 현재까지 이어져 오면서 대체로 원형을 유지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각종 기록과 유물이 잘 남아 있어 연혁과 유래를 알 수 있다. 대웅전은 17세기에 지어진 다포계 맞배집의 전형적인 형식을 공유하면서 조선 후기의 건축적 경향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사적 가치가 높다.

 

의성 대곡사 범종루는 대곡사 창건 전후 사적기>의 기록을 통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병화로 전소되어 17세기 중·후반인 1644년에서 1683년 사이에 중창되었다고 전해진다. 범종루는 정면 3, 옆면 3칸의 2층 누각 건물이다.

 

공포의 첨차와 살미의 형태, 창방을 비롯한 다수 부재의 의장적 요소 등에서 조선 중·후기의 건축적 특징이 잘 남아 있다. 특히, 중앙칸에 주간포를 생략하고 화반을 대체한 절충식 양식이 주목된다. 범종루는 의성지역의 불교사찰이 부흥하기 시작한 17세기의 양식적 변화를 잘 간직하고 있는 문화유산으로서 누각 건축의 변천과정을 살필 수 있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순천 팔마비. '고려사'의 열전(列傳)에 따르면, 승평부에서는 수령이 교체되면 말 8필을 기증하는 관례가 있었는데, 최석은 승평부에서 기증한 말을 타고 비서랑의 관직을 받아 개성으로 떠난 후 자신이 기증받은 말과 자신의 말이 승평부에 있을 때 낳은 망아지까지 돌려보냈다. 이후로 승평부에서는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수령에게 말을 기증하는 폐단이 사라졌고, 읍민들은 최석의 청렴한 공덕을 기리기 위해 팔마비를 세웠다고 한다. (사진=문화재청)
순천 팔마비. '고려사'의 열전(列傳)에 따르면, 승평부에서는 수령이 교체되면 말 8필을 기증하는 관례가 있었는데, 최석은 승평부에서 기증한 말을 타고 비서랑의 관직을 받아 개성으로 떠난 후 자신이 기증받은 말과 자신의 말이 승평부에 있을 때 낳은 망아지까지 돌려보냈다. 이후로 승평부에서는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수령에게 말을 기증하는 폐단이 사라졌고, 읍민들은 최석의 청렴한 공덕을 기리기 위해 팔마비를 세웠다고 한다. (사진=문화재청)

순천 팔마비1281(충렬왕 7) 이후에 승평부사(昇平府使) 최석(崔碩)의 청렴함을 기리기 위해 승평부(지금의 순천)에 건립한 비석이다.

 

비석은 고려말 처음 건립된 이후 1300년대 초반 쓰러졌으나 다시 세워졌고, 이후 정유년(1597, 선조 30)의 병란으로 완전하게 훼손됐다. 그러나 1616년 부사로 부임해 온 이수광에 의해서 1617년 다시 건립됐고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현재까지 온전하게 전해졌다.

 

순천 팔마비는 건립된 이후 중건시기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순천 지역을 대표하는 중요 유물로서의 위상과 13세기에 처음 건립되었다는 역사적 유래가 있고, 1617년에 순천부사 이수광이 중건한 비의 실물이 현전하여 4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팔마비의 주인공인 최석을 청렴한 지방관의 표상으로 삼아 현재까지 이어온다는 점에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서 역사, 예술, 학술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공주 갑사 대웅전, 의성 대곡사 범종루, 순천 팔마비를 체계적으로 보존·활용하도록 해당 지방자치단체 등과 적극적으로 협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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