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심장, 예천 용문사
상태바
용의 심장, 예천 용문사
  • 관리자
  • 승인 2009.09.0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예천 용문사(龍門寺)




용문사에 다시 오니

산 깊어 세속의 시끄러움 끊겼어라.

절에는 승탑이 고요하고

묵은 벽엔 불등이 타오르네.

외줄기 샘물 소리 가녀리고

첩첩한 산봉우리 달빛을 나누고 있네.

우두커니 앉아 깊이 돌이켜 보니

내 여기 있음조차 잊게 되누나.



-사가 서거정(四佳 徐居正)의 詩





우리나라에는 신라 3대 용문사가 있다. 용의 머리인 경기 양평 용문사, 용의 꼬리에 해당되는 경남 남해 용문사, 그리고 용의 심장이라고 일컫는 경북 예천 용문사.



그 중에서도 예천 용문사는 고즈넉함과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가람들과 오직 용문사에서만 볼 수 있다는 윤장대(輪藏臺, 보물 684호)로 특히 잘 알려져 있다.



예천 용문사(龍門寺)는 신라 경문왕 10년(870년)에 두운(杜雲)선사에 의해 창건된 천년고찰이다. 절의 이름은 고려 태조가 신라를 정벌하러 남쪽으로 내려올 때 청룡 두 마리의 인도를 받아 이 사찰을 찾게 됐다하여 붙여진 것이다. 두운선사와 고려 태조와의 만남 이후 용문사는 고려왕실의 후원을 받으며 크게 성장했는데, 명종 때는 절의 왼쪽 봉우리에 세자(世子)의 태(胎)를 안치한 것을 기념하여 창기사(昌期寺)로 개명하기도 했다.












▲ 용문사 대장전(위)과 윤장대(아래)




용문사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대장전(大藏殿)은 보물 145호로 팔만대장경의 일부를 보관하기 위해 지었다고 전해지는데, 건물 모서리에 용머리와 연꽃 봉오리가 조각되어 있으며, 삼
존불 뒤의 나무로 조각된 벽체가 당시의 정교한 조각 솜씨를 보여준다.



특히 대장전 내부에 있는 보물 684호 용문사윤장대(龍門寺輪藏臺)는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현존하는 유일한 윤장대로 잘 알려져 있다. 높이 4.2m, 둘레 3.3m의 크기이며, 마루 밑에 회전할 수 있는 장
치가 있어 8면의 서가를 돌리면서 경전을 꺼내 볼 수 있도록 되어있다. 본래 승려들이 경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지만, 글을 읽지 못하는 중생들도 윤장대를 돌리면 불경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한다.








▲ 용문사 목불좌상 및 목각탱





용문사의 목불좌상및목각탱(醴泉龍門寺大藏殿木佛坐像및木刻幀, 보물 989호)은 알려진 목각후불탱 중 가장 이른 시기인 숙종 10년에 제작된 것으로 17세기 후반 조각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다. 이외에도 세조 3년(1457년)에 용문사에 잡역 면제를 인정하는 교지(보물 729호)와 석가모니의 일생을 8장면으로 묘사한 조선시대 팔상탱(醴泉龍門寺八相幀, 보물 1330호), 17세기에서 18세기 사이 조선불화의 과도기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영산회괘불탱(醴泉龍門寺靈山會掛佛幀, 보물1445호) 등 귀중한 문화재들이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일개의 말사로 이만큼 많은 문화재를 소유한 사찰도 많지 않을 것이다.

또한 용문사는 한때 '영남제일강원'으로 불릴 만큼 세가 큰 사찰이었다. 많은 학승들이 용문사에와서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외진 위치와 화재로 인해 사찰의 세가 크게 줄어들어 주지인 청안스님이 용문사를 다시 부흥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하였다고 한다.

지금 예천 용문사는 고속도로에서 가까워졌고, 인근에는 청룡사, 명봉사, 정충사, 초간정, 예천권씨종택, 어림성 등 문화 유적이 많아 역사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여행으로 최적의 장소가 되었다.







▲ 영산회괘불탱 등 불교문화재가 전시되어 있는 성보유물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