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기억, 금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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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기억, 금산사
  • 관리자
  • 승인 2010.0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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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산 남쪽 기슭에 대사찰이 있다. 고려전기 935년 후백제의 신검이 아버지 견훤을 유폐시켰던 장소로도 유명한 금산사(金山寺)다. ‘금산사사적’에 따르면 599년(백제 법왕1)에 왕의 자복사찰로 세워졌다고 한다. 통일 신라 시대 진표율사가 762년(경덕왕 21)부터 766년(혜공왕 2)까지 4년에 걸쳐 중건하였고, 고려 시대 혜덕왕사가 1069년(문종 23)에 대가람으로 중창하였다. 이후 1598년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미륵전 등 40여개의 산내 암자가 소실되었고, 1601년(선조 34) 수문대사가 재건을 시작하여 1635년(인조 13)에 완공되었다. 고종 때 미륵전·대장전·대적광전 등을 보수하였고 1934년에 대적광전·금강문·미륵전 등을 중수하였다.





▲ 금산사 경내


일주문을 지나 경내에 들어서면 금강문에서 동북쪽으로 50m 쯤 떨어진 곳에 높이 3.5m의 돌기둥 두 개가 마주보고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찰을 상징하는 깃발이나 괘불을 세울 때 버팀목으로 사용하는 석조물로, 1963년에 보물 제28호로 지정되었다. 기단석과 간대(間帶)를 완벽하게 구비한 국내 유일의 당간지주로 그 가치가 높다.





▲ 보물 제 28호 당간지주


가람의 중심에 들어서면 3층으로 이루어진 미륵전이 보인다. 미륵존불을 모신 법당으로 달리 용화전·산호전·장륙전으로도 불린다. 층마다 다른 이름의 현판이 달려 있는데 1층에는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에는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에는 미륵전(彌勒殿)이라고 쓰여 있다.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3층 목조건물로 1962년에 국보 제62호로 지정되었다.





▲ 국보 제 62호 미륵전


미륵전 서쪽에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대적광전이 있고, 그 오른쪽 앞마당에 보물 제27호로 지정된 육각다층석탑이 있다. 신라시대의 일반적 석탑에서 고려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공예품으로 넘어가는 초기의 작품으로, 비록 완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고려시대 공예품이 지니는 초기적 수법을 잘 간직하고 있는 석탑이다. 육각다층석탑 바로 옆으로 석련대가 보인다. 불상의 대좌로 보물 제23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1.52m, 둘레 10m에 달하는 거대한 작품으로 하나의 화강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면에 정교하고 아름다운 조각을 가지고 있다. 석련대 건너편에는 보물 제22호로 지정된 노주가 있고, 그 옆으로 석등이 있다. 고려시대 팔각석등으로 지대석에서 보주까지 거의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보물 제828호로 지정되어 있다.

미륵전의 정면 서쪽에 다포식 팔작지붕을 가진 대장전이 있다. 본래 진표율사가 미륵전을 짓고 이를 장엄하는 정중목탑(庭中木塔)으로서 정팔각원당형으로 조성했던 건물이다. 이후 1635년(인조 13)에 가람을 중창하면서 목탑이었던 것을 지금과 같은 전각 형태로 변형하였다. 이때 대장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지금도 전각꼭대기에 복발과 보주 등이 남아 신라 때의 목탑형식을 엿볼 수 있다. 1985년에 보물 제 827호로 지정되었다.





▲ 보물 제 827호 대장전


고개를 좀 높이 올려 미륵전 북쪽을 보면 석종모양의 사리계단인 방등계단과 5층석탑을 볼 수 있다. 각각 보물 제 26호, 보물 제 25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리계단 앞에 위치한 석탑을 보면서 당시 사리를 섬기던 신앙의 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금산사 일원은 2008년에 사적 496호로 지정되었다. 11개의 국가지정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는 호국 사찰로 역사적·문화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아울러 금산사가 그 숱한 세월을 보내며 간직하고 있을 수많은 기억들도 함께 느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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