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사비기 왕궁의 비밀을 풀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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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사비기 왕궁의 비밀을 풀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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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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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백제 사비기(538~660년) 왕궁터로 추정되는 부여 관북리백제유적에 대한 발굴조사 내용을 수록한 ‘부여 관북리백제유적 발굴보고 Ⅲ, Ⅳ’ 2권을 발간했다고 밝혔다.





▲ 관북리백제유적 전경


부여 관북리백제유적은 1982년 주춧돌과 연화문수막새 등 백제시대 유물이 다수 발견되면서 백제 사비기의 왕궁 후보지로 인식된 이후, 1982년부터 1992년까지 충남대학교박물관의 발굴조사로 백제시대 연못과 도로, 각종 건물터 등이 확인되었다. 이후 2001년에 사적 제428호로 지정되었고, 이 일대의 전반적인 조사를 통해 왕궁의 위치와 규모를 확인하고자 학술발굴조사가 재개되었다. 학술발굴조사는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2001년부터 2008년까지 8년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 발굴된 “首府”명 기와


이번에 간행된 ‘부여 관북리백제유적 발굴보고’에는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남편과 서편 일대 “추정 왕궁터”에서 조사된 백제시대 대형 전각(殿閣)건물터, 돌이나 나무로 짠 지하 저장고시설, 방형의 연못, 도로, 기와로 조립한 도수(導水)시설 등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가 수록되어 있다. 특히 대형 전각건물터는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도 확인된 바 있는 중심적인 건물의 하나로 이 일대가 왕궁터였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유구 중 하나이다. 더불어 ‘수부(首府)’라는 글자가 찍힌 명문와, ‘하천상(下賤相)’이 쓰인 목간, 변기형토기인 호자(虎子), 불상의 광배(光背), 백제인의 얼굴이 그려진 묵서인면문토기 등 다양한 연구 자료와 유물이 다수 확인되었다.





▲ 발굴 유물 - 금동광배(좌), 묵서인면문토기(우)






▲ 발굴유물 - 변기형토기


또한 2008년 구드래 주차장부지 일대에서 조사된 백제시대의 기와 깔린 시설(건물지)·석축시설,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우물지 등을 발굴조사 한 결과가 수록되어 있다. 특히 저습지를 메우고 대지를 조성하여 왕궁의 영역을 서북쪽으로 확장한 사실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흙을 돋아 대지를 조성한 흔적은 백제 관북리 백제유적 곳곳에서 확인되었는데 크게 두 번에 걸쳐 이루어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백제시대에 이 일대에서 대규모 토목공사를 두 번에 걸쳐 실시하여 사비의 중심 공간을 재정비하고 영역을 확장하였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 대형 전각건물터 전경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이번에 발간되는 보고서를 통해 “부여 관북리 일대에 분포하는 백제시대 유구의 분포 양상과 시기적 변천 과정을 종합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어, “앞으로 사비기 백제 왕궁 연구에 중요한 기본 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 부여 관북리백제유적 발굴보고서


한편, 2008년까지의 조사로 부여 관북리 백제유적 일대에 대한 조사가 일단락 되었으나 아직도 정전(正殿)의 위치 등 왕궁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서는 이미 시가지로 변한 부소산 남쪽 기슭에 대한 전면적인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한다. 따라서 “부여군의 부여고도보존계획과 보조를 맞추어 이 일대에 대한 장기적인 학술 발굴 조사계획을 수립하여 백제 사비기 왕궁의 실체를 지속적으로 구명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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