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연사(龍淵寺), 그만의 신비로운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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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연사(龍淵寺), 그만의 신비로운 매력
  • 관리자
  • 승인 2011.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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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계단에서 찍은 대웅전

돌계단 오를 땐 무주중력(無主衆力)이 사바의 모든 것을 이고 있는 듯 힘이 든다. 아무래도 등줄기에 재촉하는 서두름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그 재촉하는 부단한 교훈으로 날쌘 바람 한 점이 되어 온갖 우주의 중압을 틀어놓고 몰려오는 것 같다. 사람은 인연을 낳고 또한 산사는 무정(務停)을 낳는데, 어떤 연이 닿아 이곳에 있을까, 싶은 대웅전이 정면에서 응시한다. 그 옆으로 보잘 것 없는 탑이다.

날씨는 볼을 갈퀴로 휩쓸 듯 사납고 매서웠다. 색색의 탄성이 절로 나올 듯, 계단 아래는 일경 백색의 향연이다. 겨울 산사는 이래서 언제나 겸손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눈을 치뜨면 바람이 시퍼렇게 눈동자를 파고드니, 질근할 수밖에.



서럽지 않음은 이 산사에 있다. 정갈하여 그 맛이 더욱 생경스러우니 보지 못한 느낌은 어느덧 시간이 업동이하자 다정하게 토닥인다. 아무런 것이 없으니. 무(無) 그저 바라보는 곳에 있으니 유(有)다. 그저 그렇게 보잔다. 이 산사는, 용연사는!



문화적으로 그 맛이 어떤 색인지 따지지 말자 하니 그게 바로 용연사다. 경내에 아무렇게나 쌓아올린 듯한 석탑이다. 받침석, 기단석,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은데, 눈밭에 그 멋은 구태여 그걸 따져서 뭐하게, 하는 질문만 가득하다.

이채롭다. 그 어느 사찰에 없는 또 하나의 비경 같다. 아무런 특색이 없으니 그 안에 내 것을 제 것인 양 색칠하고야 만다. 돌아서면 눈에 보이는 곳에 사람이 서 있는 듯하고, 그리고 그 교양 보이는 듯 번듯한 당간은 어떠한가. 왜 이런 걸 하고 생각을 만들어서 눈을 치켜 떠보면 그 교잡한 맛이 이건 “바라아제” 하고 싶은 마음을 저편으로 물린다.



공양간이 또한 그랬다. 뭔 세면이냐 싶었는데, 그저 나쁘지 않다. 대충한 것이 얼마나 고단한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구나, 싶다. 말하지 않아도 말해야 하는 것도 느긋한 정취에 맞물리지 않는 부단함, 그리고 그 부단함에 한마디 해주고 싶은 속없는 깊이에 무한정한 절대순종이다.



누군가 그랬다. 잘난 것은 잘난 것이 아니라, 오만함일 뿐이라고. 그리고 그 오만함 속에서 서로 느끼는 감정의 교차성은 절대적인 표정, 그런 표정이 이 용연사에 남아있다면 특색 있는 문화유산이 한 점 없더라도 기적을 바라지 않는 편안함 속에 단정해지는 마음뿐이라고.





▲ 오층석탑

이 사찰은 도대체 언제 지어진 것일까. 형식적인 기록이지만 그 기록에 의하면 용연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이다. 신라 선덕여왕(재위:632∼647) 때 자장(慈藏)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엄경』을 강(講)하고 화엄교법(華嚴敎法)을 천명할 때 52명의 여인이 나타나 법을 듣고 깨닫자 문인(門人)들이 그 수만큼의 나무를 심어 이적(異蹟)을 기념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 자장율사, 그 나무를 지식수(知識樹)라고 불렀다. 이로 인하여 신라에 화엄사상을 최초로 소개한 인물이 이 자장율사이다. 특히, 자장율사는 신라야말로 예부터 불교와 인연이 깊은 터전이라고 믿었는데, 그러한 불국토사상(佛國土思想)이 아마도 그의 발길을 이 강릉의 용연사로 접어들게 했으리라. 전국에 모든 토지에 부처님의 사상을 전파하겠다는 의미, 절 아래 계곡에 용추(龍湫)가 있어서 용연사라 하였다.





▲대웅전에 있는 불상

건물로는 대웅전과 원통보전·삼성각·요사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건물로 내부에 석가모니불·문수보살·보현보살의 삼존불이 놓여 있고, 그 뒤로 목각후불탱화가 모셔져 있다.



삼성각에는 칠성과 산신·독성이 각각 탱화로 걸려 있으며, 원통보전에는 조선 후기에 조성된 관세음보살상이 있다. 유물로는 8기의 부도와 석탑·귀부(龜趺) 등이 남아 있다. 부도는 1∼1.44m의 크기로서 모두 석종형이고, 부암당(浮巖堂)과 계월당(桂月堂)·원파당(院波堂)·주파당(州波堂) 등의 이름이 적혀 있다. 한편 오층석탑은 높이 3.6m로 1967년에 옛 기단부에 세운 것이다.



어쨌든 눈길에 한없이 정겹게 느껴지는 용연사에서 무령 하루해를 뉘일 수만 있다면 그것도 과히 나쁘지 않은 겸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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