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자격증 대여, 탁상행정의 결과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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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자격증 대여, 탁상행정의 결과물
  • 관리자
  • 승인 2014.0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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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전주 귀신사 대적광전(보물 제826호) 뒤편의 지은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신축 법당 건물이 와르르 무너졌다. 당시 국회 문광위 소속이었던 정병국 의원실에서 조사를 한 결과 해당 건물은 문화재 무자격자, 즉 문화재 면허 대여 업체에서 공사를 진행한 것으로 밝혀졌고, 이를 계기로 문화재 면허 대여 문제가 본격적으로 국회에서 논의 된 바 있다.



이에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어 몇 차례 정부와 협의를 거친 후 대안으로 문화재 전문건설업, 즉 문화재 수리기술자를 중심으로 일반 건축에서 분리해서 하도급 및 문화재 공사 관리를 진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화재 면허 대여 문제는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서울용산경찰서는 4일, 금품을 받고 문화재 보수, 단청 기술자 자격증을 대여한 혐의로 숭례문 복원공사 단청을 맡았던 홍모 단청장, 전 문화재청 과장, 현 문화재 수리기술자격시험 출제위원 등 15명의 보수기술자를 입건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들에게 자격증을 대여받은 보수건설업체 법인 19개소와 대표자 19명도 입건됐다고 밝혔다.



자격증을 대여받은 문화재 수리업체들은 문화재 보수 기술자 2명, 단청기술자 1명을 포함하여 보수, 단청 분야의 기술자 4명을 보유해야 한다는 등록 조건을 갖추기 위하여 기술자들에게 금품을 지급하고 자격증을 대여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홍 모 단청장은 2013년 7월 22일 전북 군산 소재 수리업체로부터 선불금 1,500만원 및 매월 110만원을 받고 단청 기술자 자격을 대여하는 등, 2010년 2월부터 최근까지 3개 업체에 단청 기술자 자격증을 대여하고 총 3,780만원의 부당 이득을 취한 혐의를 받고있다.



또한 홍 모 단청장의 가족과 전 문화재청 과장이었던 김 모씨,현 문화재수리기술자격시험 출제위원 곽 모씨 등 15명도 문화재 수리건설업체로부터 매년 1,100~3,500만원의 금품을 받고 단청·조경 및 보수기술자 자격증을 대여한 혐의로 입건됐다.



자격증을 대여해준 수리기술자들 중에는 문화재연구소 연구원, 문화재 관련 협회 이사, 대학 교수, 화가, 회사원 등 문화재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경찰은 자격증 대여 비용을 충당키 위하여 문화재 공사시 질이 떨어지는 원재료를 사용하는 등 부실 공사의 원인이 되고 있어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으며, 전국의 문화재 수리업체들을 상대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의 원인에는 바로 ‘전문성’을 빙자한 문화재판의 어두운 속성이 존재한다. 실제로 문화재 기술자가 현장에서 직접 일을 진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모든 공사는 문화재 현장 경험이 많은 기능공이 맡아서 한다. 갓 대학을 졸업하고 책상에 앉아 수리기술자 자격을 따낸 문화재 기술자는 경험이 미비해 현장의 유동적인 상황에 대처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문화재청은 ‘기술자 면허’라는 조항에 문화재의 미래를 맡겨 두고, 동절기 공사가 중단되어도 문화재 기술자는 상시 보유하라고 주문한다. 터무니 없는 예산 낭비다.



사오십년 문화재 판에서 경험을 쌓은 노련한 기능공이 갓 대학을 졸업한 문화재 수리기술자에게 지휘를 받는 구조를 깨야 한다. 기능공도 엄연히 시험을 치르고 자격을 인정받는다. 기능공의 자격과 현장 경험의 유무도 따져 공사를 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비리의 온상이 되어버린 듯한 문화재수리업계, 그러나 문화재 부실 공사 업체 양산은 바로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와 전문성을 빙자한 문화재청의 탁상행정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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