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N 뉴스 - 익산 쌍릉 발굴 인골, ‘백제 무왕’ 가능성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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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N 뉴스 - 익산 쌍릉 발굴 인골, ‘백제 무왕’ 가능성 높아
  • 관리자
  • 승인 2018.07.18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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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 당시 목제유골함과 내부 인골 파편 ▲ (사진-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硏 “7세기 사망한 큰 키의 노년기 남성”


지난 4월 익산 쌍릉에서 발굴된 인골이 ‘서동요’ 설화의 주인공인 백제 무왕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이상준)는 18일, 102개의 조각으로 남아있던 인골을 분석한 결과, 남성 노년층의 신체 특징과 병리학적 소견을 확인했으며, 사망 시기는 7세기 초중반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쌍릉(대왕릉) 조사 전 모습> ▲ (사진-문화재청)

그동안 쌍릉은 백제 시대 말기의 왕릉급 무덤이며, 규모가 큰 대왕릉을 서동 설화의 주인공인 무왕의 무덤으로 보는 학설이 유력했는데, 이번 인골 분석 결과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인골의 키는 161㎝에서 최대 170.1㎝로 추정되는데, 이보다 훨씬 후세대인 19세기 조선 시대 성인 남성의 평균 키가 161.1㎝인 것을 고려하면 비교적 큰 키이다. '삼국사기'에 무왕은 ‘풍채가 훌륭하고, 뜻이 호방하며, 기상이 걸출하다’라고 묘사되어 있다.

나이는 최소 50대 이상의 60~70대 노년층으로, 남성 노년층에서 발병하는 등과 허리가 굳는 증상, 다리와 무릎의 통증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옆구리 아래 골반뼈에서는 골절되었다가 치유된 흔적이 발견됐는데 타격보다는 낙상 등에 의한 것으로 보이며, 치료기간은 3개월 정도로 직접적인 사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인골의 상태확인과 분류작업 ▲ (사진-문화재청)

가속 질량분석기(AMS, Accelerator Mass Spectrometer)를 이용한 정강뼈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보정연대가 서기 620~659년으로 산출되어 인골의 주인은 7세기 초중반의 어느 시점에 사망한 것을 알 수 있다.

무왕이 600년에 즉위하여 641년 사망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무왕이 10대나 20대에 즉위했을 경우 사망 나이가 인골의 추정 나이와 비슷하다. 사망 시점이 7세기 초반부터 중반 즈음이라는 인골 분석 결과는 익산을 기반으로 성장하여 같은 시기에 왕권을 확립한 백제 무왕의 무덤이라는 역사적 가능성을 높여준다.

한편 쌍릉의 존재는 '고려사'에서 처음 확인되며, 고려 충숙왕 때(1327년) 도굴되었다는 사건기록도 남아 있다. 당시부터 고조선 준왕이나 백제 무왕의 능이라는 설이 있었다.

쌍릉(대왕릉) 석실 내부와 목제유골함> ▲ (사진-문화재청)

1917년 조선총독부가 쌍릉을 며칠 만에 졸속으로 발굴하면서 백제 말기의 왕릉이거나 그에 상당한 자의 능묘라는 것은 확인했지만, 1920년 고적조사보고서에 단 13줄의 내용과 2장의 사진, 2장의 도면만 공식기록으로 남겨놓았다.

연구소는 “진행 중인 대왕릉 보완조사와 앞으로 진행할 소왕릉 조사·연구 등을 통해 익산 쌍릉의 성격과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규명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추가적인 인골 심화연구, 백제 후기 왕릉급 고분의 구조와 특징 등에 대해 중장기 연구계획을 수립하여 백제 왕도의 역사성 회복을 위해 지속해서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취재팀 김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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