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취재] 조선의 천문시계 혼개통헌의(渾蓋通憲儀) 보물 제2032호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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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취재] 조선의 천문시계 혼개통헌의(渾蓋通憲儀) 보물 제2032호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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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7.0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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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천문시계 혼개통헌의 전면 / 후면>▲(사진=문화재청)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현존하는 과학 문화재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18세기 조선에서 제작된 천체 관측 기구인 ‘혼개통헌의’를 보물 제2032호로 지정했다. 「혼개통헌의(渾蓋通憲儀)」는 해시계와 별시계를 하나의 원판형 천체의 운동을 관측하는 기구에 통합해 표현한 천문 관측 도구로,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알려진 제작 사례이다. 그리고 이 유물은 1930년대 일본인 토기야(磨谷)가 대구에서 구입해 일본으로 반출했으나, 2007년 고(故) 전상운 교수의 노력으로 국내에 환수된 문화재이다.

혼개통헌의는, 이슬람 지역에서 기원한 천문시계 '아스트롤라베'(Astrolabe)를 자국 사정에 맞게 변형해 만든 천문 관측 도구로, 마테오 리치에게 학문을 배운 명나라 학자 이지조(李之藻·1569∼1630)가 아스트롤라베 해설서를 번역해 1607년 펴낸 '혼개통헌도설'(渾蓋通憲圖說)에 기반해 제작한 기구다.

유득공 숙부인 유금(1741∼1788)이 1787년에 제작했으며, '건륭 정미년에 약암 윤 선생을 위해 만들다'(乾隆丁未爲約菴尹先生製)라는 명문과 '유씨금'(柳氏琴)이라는 인장이 있다. '약암 윤선생'은 아직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혼개통헌의는 우리나라 하늘에서 주로 관측되는 별자리 사이에 있는 작은 별들의 위치도 표시했을 정도로 섬세하게 제작되었다. 이는 유금의 ‘혼개통헌의’가 중국 '혼개통헌도설(渾蓋通憲圖說)'의 영향을 받았으나 그가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조선식 천문시계를 만들었음을 잘 보여준다.

조선의 천문시계 혼개통헌의(渾蓋通憲儀)

‘혼개통헌의’는 별의 위치와 시간을 확인하는 원반형의 모체판(母體板)과 별의 관측지점을 알려주는 여러 모양의 침을 가진 T자 모양의 ‘성좌판(星座板)’으로 구성되었다. 모체판 앞면 중심 구멍에 핀으로 성좌판을 끼워 회전해 가며 사용한다.
모체판 외곽은 24등분해 시계 방향으로 시각을 새겼고, 남회귀선·적도·북회귀선을 나타내는 동심원을 바깥쪽부터 차례대로 표시했다.

하늘 북극과 황도상 춘분점, 동지점을 연결하는 T자 형태의 성좌판은 곳곳에 솟은 11개 지성침(指星針)을 이용해 천문 정보를 확인 가능하다. 뒷면 위쪽에는 '북극출지 38도'(北極出地三十八度)라는 위도를 새겼는데, 서울 위도 북위 37.5도와 거의 일치한다. 이밖에 밤 시간에 특정한 별을 관찰하는 ‘규형(窺衡)’, 별의 고도(위치)를 확인하는 ‘정시척(定時尺)’도 함께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모체판과 성좌판만 남아 있다.

모체판과 성좌판에는 북극성, 직녀자리, 견우자리, 처녀자리, 천칭자리, 뱀주인자리, 안드로메다(Andromeda), 오리온(Orion), 페가수스(Pegasus) 등 계절별 주요 별자리가 표시되었으며, 그밖에 알파드(Alphard, 바다뱀자리의 가장 밝은 별), 프로시온(Procyon, 작은개자리에 속한 별) 등 우리나라 하늘에서 주로 관측되는 별자리 사이에 있는 작은 별들의 위치도 표시했을 정도로 섬세하게 제작되었다.

조선의 우수한 수학과 천문학 수준을 보여주는 과학 문화재

이러한 ‘혼개통헌의’는 서양의 관측기기인 아스트롤라베를 받아들여 동아시아에서 제작된 유일무이한 천문 도구이자 서양 천문학과 기하학을 이해하고 소화한 조선 지식인들의 창의적인 성과를 보여주는 실례다. 또한, 제작 원리와 정밀도에 있어서도 18세기 조선의 수학과 천문학 수준을 알려주는 우리나라의 소중한 과학 문화재로서 보물로 지정해 그 가치를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유금은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독자적으로 별을 그리고, 중국 책의 실수를 바로잡기도 했다"며 "조선 지식인들이 서양 천문학과 기하학을 이해하고 소화해 창의적인 성과를 낸 사례"라고 강조했다.

취재팀 박혜린 기자
hellolin23@icp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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