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호국인물, 민긍호(閔肯鎬)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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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호국인물, 민긍호(閔肯鎬)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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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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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념관은 한말 의병장으로 큰 전공을 세우고 순국한 민긍호(閔肯鎬) 독립운동가를 2005년 '12월의 호국인물'로 선정 발표했다.














▶ 12월의 호국인물, '민긍호'



민긍호 독립운동가는 서울 출생으로 1897년 원주진위대의 정교(正校)를 거쳐 1901년 특무장교를 지냈다. 1907년 8월 5일, 일제가 원주진위대를 해산하려 하자 ‘나라에 병사가 없으면 무엇으로써 나라라고 할 수 있겠는가? 군대해산 명령에 순종할 수 없다’며 300명의 병사를 이끌고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민긍호 의병부대는 원주 우편취급소와 일본경찰 습격을 시작으로 제천, 죽산, 장호원, 여주, 홍천 등지에서 유격전으로 크게 활약했다. 1907년 8월 12일 의병대는 여주를 기습, 일경을 처단하고 무기를 접수하는데 성공했으며 이때 수많은 지역민이 의병부대에 지원해 그 수는 수천 명으로 불어났다







이후 민긍호 의병부대는 원주 우편취급소와 일본경찰 습격을 시작으로 제천, 죽산, 장호원, 여주, 홍천 등지에서 유격전으로 크게 활약했다. 1907년 8월 12일 의병대는 여주를 기습, 일경을 처단하고 무기를 접수하는데 성공했으며 이때 수많은 지역민이 의병부대에 지원해 그 수는 수천 명으로 불어났다. 이어서 민긍호 의병장은 이강년 의병부대와 연합하여 충주지방 탈환을 위한 전투를 벌이는 등 홍천, 춘천, 횡성, 원주 일대에서 일군과 격전을 벌여 적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1908년 2월 29일 원주 치악산 인근전투에서 붙잡히는 몸이 되자 그날 밤 부하 60여 명이 의병장을 구하기 위해 강림을 습격, 탈출하던 중 안타깝게도 적탄에 맞아 순국했다.



일본군이 민긍호 의병부대에 대해 ‘폭도의 출몰이 교묘하여 토벌의 효과가 현저하지 못하다’고 기록했을 정도로 민긍호 의병부대는 당시 강원도 일대에서 가장 세력이 컸을 뿐 아니라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로 전진하며 모두 100여 차례의 전투에서 일제에 큰 타격을 주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으며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에는 주민들의 성금으로 건립한 ‘의병대장 민긍호 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오는 12월 8일에는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는 민긍호 의병장의 후손을 비롯한 종중과 유관단체 주요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고인을 추모하는 현양행사가 거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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