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월성해자 발굴현장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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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월성해자 발굴현장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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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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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윤근일)는 오늘(5월 25일) 월성해자(月城垓子) 발굴조사 현장설명회를 개최했. 월성(月城, 사적 제16호)은 신라의 왕이 살았던 궁궐이 있었던 곳으로 해자(垓子)는 월성 성곽 외부에 구덩이를 파고 물을 담아 놓아 성으로 진입하려는 적을 방어할 목적으로 축조됐나, 7세기 이후에는 안압지(雁鴨池)와 같이 석축을 쌓아 조경시설로 이용됐다.



월성 발굴조사는 일본인들이 성벽 일부를 절개(大正5년<1916>, 朝鮮古蹟圖譜 三冊)한 이후에 1979년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의 전신인 문화재관리국 경주고적발굴조사단이 <동문지東門址 발굴조사>를 진행하다가 중단됐다. 이후 1984년에 성벽 외곽을 따라 시굴조사가 이뤄졌고, 1985년부터 지금까지 22년째 해자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이번 현장설명회에서는 1999년부터 진행된 석빙고 북서편의 석축해자(4호)를 공개했다.















▶ 월성해자 출토 수막새








석축해자(4호)는 동쪽에 입수(入水)시설 서쪽에 출수(出水)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모두 3차례에 걸쳐 축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즉, 가장 외곽에 천석(川石강돌)으로 3~5단 가량 쌓은 4호-1차 해자, 이후 성벽 쪽에 할석(割石 깬돌)으로 쌓은 4호-2차 해자, 그보다 성벽 쪽으로 더 가까이 천석과 할석을 함께 쌓은 4호-3차 해자가 조사됐다. 석축해자 보다 이른시기에는 수혈(竪穴)해자가 존재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청동기시대 주거지 1기가 확인되었고, 3차 해자 내부에서 사람의 발자국(25cm×10cm)으로 보이는 흔적이 다수 발견됐다.



해자의 내부는 뻘흙으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유물들이 보존될 수 있었다. 현재까지 20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토기와 기와를 비롯하여 목재·칠기·조개껍질·동물뼈와 같은 유기물도 포함되어 있다.



이번에 공개되는 해자는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되어 탐방객들에게 서비스될 계획이며, 앞으로 발굴유물의 보존처리가 완료되어 보고서가 간행되고 전시가 이루어진다면 당시의 생생한 삶의 흔적을 느껴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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