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종의 잠저, 용흥궁(龍興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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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의 잠저, 용흥궁(龍興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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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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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의 강화경찰서 왼쪽 담 옆길을 따라가다 보면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호인 '용흥궁(龍興宮)'이 나온다. 이곳은 조선 제24대 왕이었던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곳이었다.



왕세자와 같이 정상법통이 아닌 다른 방법이나 사정으로 임금으로 추대된 사람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을 잠저(潛邸)라고 하며, '궁(宮)'은 왕이나 왕족이 살았던 곳을 단순히 일컫는 말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서울의 운현궁은 흥선대원군의 궁도 되지만 그의 아들이제 조선 제26대 고종의 잠저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잠저로는 태조의 함흥 본궁과 개성 경덕궁, 인조의 저경궁과 어의궁, 영조의 창의궁, 고종의 운현궁 등이 있다.















▶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호 '용흥궁(龍興宮)' 대문
- 좁은
골목에 있어 전경을 찍기 어렵다.















▶ 봉영의식(奉迎儀式)을 주도한 상국 영의정 정원용의 비와
유수 정기세의 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잠저는 대개 왕위에 오른 뒤에 다시 짓는데, 용흥궁도 원래는 3칸짜리 초가집이었으나 1853년(철종 4)에 강화 유수 정기세(鄭基世)가 지금과 같은 집을 짓고 용흥궁이라 불렀다. 그 뒤 1903년(광무 7)에 청안군(淸安君) 이재순(李載純)이 중건했다. 좁은 골목 안에 대문을 세우고 행랑채를 둔 용흥궁의 건물은 창덕궁의 연경당(演慶堂), 낙선재(樂善齋)와 같이 살림집의 유형에 따라 만들어졌다.



현재 용흥궁 대문 왼편에는 봉영의식(奉迎儀式)을 주도한 상국 영의정 정원용의 비와 유수 정기세의 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 용흥궁의 안채













▶ 용흥궁의 사랑채













▶ 철종이 머물던 곳임을
표시하는 비각과 '철종잠저구기(哲宗潛邸舊基)'






'龍興宮'이라는 현판아래 대문을 통과하면 행랑채를 마주하고 안채가 있다. 돌계단을 올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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