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再발견 제108편 '경주 오릉', 문화재 재발견의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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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오릉은 경주시내 평지 서남쪽에 위치한 4기의 봉토무덤과 1기의 원형무덤입니다. 신라시대 서기 3년부터 111년경까지의 시기의 무덤으로 1969년 사적 제17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제2대 남해왕, 제3대 유리왕, 제5대 파사왕 등 신라 초기 4명의 박씨 임금과 혁거세의 왕후인 알영왕비 등 5명의 무덤이라 되어 있습니다.
『삼국유사』에는 혁거세왕이 임금자리에 있은지 62년 만에 하늘로 올라갔다가 7일 후에 몸이 흩어져 땅에 떨어지자 왕비도 따라 죽으니, 사람들이 같이 묻으려고 했으나 큰 뱀이 방해해서 몸의 다섯부분을 각각 묻었는데, 그것을 오릉 또는 사릉이라 했다고 합니다.
내부구조는 알 수 없으나 무덤의 겉모습은 경주시내에 있는 다른 삼국시대 신라무덤과 같이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원형 봉토무덤으로, 1호 무덤이 높이 10m로 가장 크며, 2호 무덤은 표주박형으로 봉분이 두 개인 2인용 무덤입니다.
이러한 대형 원형 봉토무덤은 신라에서는 4세기 이후 등장하는 것으로 박혁거세 당시의 무덤 형식은 아닙니다. 오릉의 주변에는 박혁거세의 비 알영이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우물터 등의 신라의 시작을 상징하는 유적들도 남아있습니다.
2014년 문화재청의 조사서에 따르면 고분공원으로 정비되어 있으며, 봉분 등의 보존관리 상태는 전반적으로 양호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경주 오릉은 신라의 뿌리가 된 왕과 왕비의 무덤으로서 역사의 시작을 함께한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이에 CPN문화유산에서는 경주 오릉의 문화재 보존관리 상황에 대해서 알아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CPN문화유산에서는 앞으로도 숨겨진 문화재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문화재를 국민과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생생한 문화재현장 스토리를 전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취재팀 임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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