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머금고 꽃봉오리를 터트리는 꽃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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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머금고 꽃봉오리를 터트리는 꽃살문
  • 관리자
  • 승인 2009.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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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사는 신라 선덕여왕 8년(639) 회정선사가 세운 것을 조선시대 세종 8년(1426)에 함허대사가 증축을 하였다. 건물 서쪽에 즉 마니산 중벽을 타고 맑은 물이 솟아나는 것을 보고 이름을 정수사라 고쳤다.


석가모니 불상을 모신 대웅보전에서는 1957년 보수공사 때 숙종 15년(1689)에 수리하면서 적은 기록을 찾아냈다. 이 기록에 의해 세종 5년(1423)이라는 중수 기록을 찾아낸 것이다. 함허대사는 차나무가 자생하지 않는 한수 차령산맥 북쪽 지방에서 차를 마신 몇 안 되는 스님이었다. 정수사의 물맛이 그를 차인으로 이끌었던 것은 아닐까. 물맛이 그렇게 사람의 오감을 사로잡으니 법승이나 사바세계의 대중이나 정수사의 물로 세정하듯이 모든 욕심을 내려놓는 법계의 세상으로 빠져든다.






▲ 정수사 전경





함허대사의 다시(茶詩)



一椀茶出一片心

一片心在一椀茶

當用一椀茶一嘗

一嘗應生無量樂

한 잔의 차는 한 조각 마음에서 나왔으니

한 조각 마음은 한 잔의 차에 담겼어라

마땅히 이 차 한 잔 한 번 맛보시게

한 번 맛보시면 한없는 즐거움이 솟아난다네.






▲ 정수사 샘물


법당은 앞면 3칸·옆면 4칸이지만 원래는 툇마루가 없이 앞면과 옆면이 3칸 건물이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고, 지붕 무게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앞뒷면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앞면 퇴칸이 후대에 다시 설치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앞쪽 창호의 가운데 문은 꽃병에 꽃을 꽂은 듯 화려한 조각을 새겨 뛰어난 솜씨를 엿보게 한다.






▲ 대웅전




통나무에 조각한 것이 보물 지정(보물 제 161호) 에 결정적 역할을 한 꽃살문이다. 가히 비가 오면 수분을 흡수하여 모든 꽃무늬들이 꽃봉오리를 터트리는 듯 꿈틀대니 그냥 보고만 있어도 황홀경에 젖어든다. ‘구름 잡고 돌에 앉아 청산에 늙어 온갖 잎 다져도 혼자 견디는 겨울 네 몸 갈아서 세상 맛 섞였으니 그 맛 따라 이 맑은 추위 알게 하는 소나무’ 함허대사의 시구절처럼 그렇게 꽃살무늬를 정점으로 하여 정겹게 다가서는 대웅전의 뒷모습.


살아있는 듯 그렇게 세상을 향해 온갖 신비의 자태를 뽐내고 있는 꽃살문, 한 각, 한 각, 그 깊이나 느낌은 자못 선의 세상에 드는 사바 대중의 못난 아름다움을 탓하는 듯하다.






▲ 대웅전 꽃살문




고말조초(高末朝初)의 혼탁한 사회상에 함허대사는 ‘현정론(顯正論)’으로 조선의 불교탄압에 부당성을 말하였다. 정도전의 국시 이념에 반하여 외로운 사투를 통해 지쳐갈 때 마음 곳간을 열던 곳이 역시 정수사, 정수사의 꽃살무늬의 또 다른 가르침이었을지 모른다. 무의 세상, 혹은 허공의 세상, 그 안에 천상과 있다면, 극락의 요체가 있다면 꽃살무늬의 화려한 것 같지만 결코 티를 내서 화려해하지 않고, 소박한 것 같지만 결코 화려함에 비견되는 소박함을 가진 꽃살무늬. 우중에 그토록 절절한 표현으로 대웅전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정수사는 오르는 길이 모두 누군가의 소작으로, 보수를 바라지 않는 공덕으로 만들어진 예술 같은 느낌이다. 빗속에 가장 단아하게 조각한 한 폭의 그림이다. 그 옆으로 단잠에 빠져 있는 듯 들꽃이 무심한 듯 그렇게 사람을 맞는다. 그 위를 흔들리는 빗방울이 오히려 애처롭다. 세월의 군더더기라고는 단 한 점도 찾아볼 수 없도록 세월의 무변으로 싹싹 훑어댄 단정함.


일출을 볼 수 있는 정대(艇隊), 그것은 마니산의 아름다운 기의 향연과 더불어 선객의 왕래를 잦게 만들었다. 마치 물분수로 착착 적셔놓은 듯한 정수사 경내를 휩싸고 있는 한 여름의 수연의 향연은 이곳이 천상의 어느 하늘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드넓게 펼쳐진 바다와 울창한 숲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이곳의 소박함과 어우러져 속세에 찌든 나를 선(禪)으로 이끌고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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