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匠人] 최기영 대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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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匠人] 최기영 대목장
  • 관리자
  • 승인 2009.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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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 대목장(大木匠)




대목장(大木匠)은 궁궐, 사찰과 같은 전통 건축물 공사를 책임지는 총 책임자로 도편수라고도 한다. 재목을 선별해 치수에 맞게 자르고 다듬는 것부터 설계와 공사의 감독ㆍ관리까지 무엇하나 대목장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다.


조선 세종 때는 정5품 벼슬을 지낼 만큼 대우를 받았던 대목장이지만 차츰 전통문화에 대한 홀대 속에 하나 둘 사라져가고, 이제는 남아있는 몇몇 장인들에 의해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최기영 대목장(중요무형문화재 74호)도 그렇게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장인 중 하나다.

최기영 대목장은 1년 365일 쉬는 날이 거의 없다. 전통건축에 발을 딛은지도 50여 년, 그 긴 세월을 전통건축에 바쳐 대목장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지금도 매일같이 현장에 나간다. 최기영 대목장이 입버릇처럼 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목수는 분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배고픈 시절, 먹고살기 위해 전통건축에 입문해 부지런함과 일에 대한 자부심만으로 이 자리까지 올라선 그다. 장인으로 인정받고 대목장이라는 호칭이 붙어도 그는 여전히 손에서 연장을 놓지 않는 ‘목수’다.

그가 목수 일 만큼이나 열정을 쏟아붓는 일이 또하나 있다면 건축 현장에서 쓰는 용어를 우리말로 바로 잡는 일이다. “대학생들이 논문을 쓴다고 전통 건축용어를 자꾸 물어보는데 그게 다 일본어야. 일본어로 된 용어를 우리 고유의 용어인 줄 잘못알고 있더라고. 학생들 보기 부끄럽고 미안하지….”

수년간 ‘우리말 전통건축용어사전’을 만들고자 바쁘게 뛰어다녔지만, 문화재청에서도 정부에서도 관심 갖는 곳은 없었다. 그래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건축용어 정비의 시급함을 역설한다. 이렇게 부르짖으면 언젠가 한번쯤은 귀 기울여주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뒤를 이을 문화재 기능인 양성도 그가 힘쓰고 있는 과제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에는 현재 5천여 명의 기능인이 등록되어있지만 정부의 지원과 대우는 열악하기만 하다. 21세기를 이끌어갈 문화콘텐츠는 전통이라고 외치면서도 변변한 기능 전수교육관 하나 없는가 하면, 미술이나 음악 등 다른 분야에는 몇 개씩이나 수여되는 대통령상에서조차 문화재 기능인들은 소외되어 있는 현실이다.

최기영 대목장은 용어 정비사업이든, 문화재 기능인 처우 개선이든 지난 50여 년을 그랬던 것처럼 알아주는 이 하나 없어도 또 부지런히 부딪쳐 볼 결심이란다. 부서지고 뒤틀린 전통 건축물들을 옛
모습으로 되살리 듯 전통이라는 기둥을 바로 세우고 그 기초를 튼튼히 다지기위해 꼭 해야할 중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내가 충청도 출신인데, 끈질긴 것 하나는 충청도 사람 못따라와.” 대목장의 웃는 얼굴에 자신감이 내비친다.





최기영 대목장의 월정교 모형 작품

(현재 최기영 대목장은 경주에서 신라 월정교를 복원 중이다.)




최기영 대목장(大木匠) 인터뷰

- 처음 전통건축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먹고살기 위해서 목수일을 배웠고, 배우다보니 내 적성에 맞고…. 또 내 몸만 건강하면 건설회사 사장도, 큰 건설업자도, 대목장도 할 수 있겠다 싶은 거에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괜찮단 말이에요. 누구는 취미가 있어서 배우고 그런 소리들을 하던데 원칙은 그게 아니에요. 먹고 살기위해 했고, 하다보니 끼가 있어서 남보다 앞서 갔지요.

- 1년 365일 거의 쉬는 날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만근(滿勤)합니다. 내가 없는 구석, 배우지 못한 구석, 못난 구석을 채우자면 그것은 전부 부지런함이에요. 여러 가지를 채우자면 부지런한 것 밖에 없어요. 지금도 회사 직원들이나, 제재공장에 가나, 현장에가나 나보다 더 일찍 출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 문화재로 인정도 받으셨으니 이제는 조금 쉬면서 하셔도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우리 노동자는 분수를 알아야 돼요, 분수. 난 이만큼 배웠으니 여기까지다, 또 대목장 일도 목수다…. 내가 대통령이 되든 국회의원이 되든 장관이 되든 목수라는 자체는 버리지 말아야 돼요. 그것을 버리면 남용이 되고, 허영이 되고, 욕심이 되니 망한단 말입니다.

- 50여 년간 전통건축 일을 해오면서 가장 힘들거나 기억에 남는 공사는 무엇입니까?
가장 고생한건 봉정사 극락전이에요. 아무데서도 얘기하지 않은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목구조에 대해 봉정사 극락전에서 배운 것이 있습니다. 목구조는 대기중의 습도를 유입하면서 상해요. 그것을 막아주는게 옺칠이고, 들기름칠이고, 단청이지요. 극락전 공사 때 맞닿은 목재들을 해체해보니 이음새에는 칠이 덜 되어있어서 나무가 틀어져 있었어요. 그러면 틀어진 것을 바로잡을 길이 없어요. 살짝만 움직여도 이미 다 삭았기 때문에 부러지고 말아요. 선조들이 만든 전통 건축물을 내가 부술까봐 걱정이 태산같았어요. 그런데 옛 선배 장인들의 말씀이나 책을보고 공부를 많이 한 대가를 이때 받았어요. 문득 들기름이 떠오른 거에요. 왜냐, 들기름은 촉촉하지만 부패되지는 않아요. 문화재에 훼손이 안된단 말이에요. 그래서 들기름을 칠하면서 하루에 1미리씩 나무를 틀었어요. 그렇게 조금씩 돌려서 바로잡은 거에요. 이건 수십년 갈고 닦은 기능인들이 아니면 생각해낼 수 없는 거에요.

- ‘우리말 전통건축용어 사전’을 펴내고자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용어는 건축에 대해서는 기본이란 말이에요. 그 기본 자체를 배우고자하는 후학들이 많아요. 전통문화학교에서 3년동안 초빙교수로 가르쳤지만 나도 모르게 일본용어가 술술 나와요. 그럼 깜짝 놀라서 둘러대요. 결정적으로 그런 생각을 한건 대학생들이 자기들이 모르는 것이 있으면 전화가 와요. ‘이것이 언제적 전통용어입니까’하고. 일본어로 말하면서 일본어인지, 한국어인지, 전통어인지 모르면서 사람들이 불러주니까 그것을 우리나라 전통용어로 착각하고 물어봅니다. 그때는 참 내 심정이 이루 뭐라고 말할 수가 없어요. 그것이 기록에 남을 것 아닙니까. 학생의 논문에 기록이 된다면 이건 영원히 남는다는 거에요.

- 현장에서 쓰고 있는 일본용어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수도 없어요. 예를 들어 도구에 보면 스끼노미, 다다끼노미, 마루노미…. 스끼노미는 민다는 뜻이고, 다다끼노미는 망치로 때려서 판다는 뜻이에요. 마루노미는 동그랗게 생겨서 미는거에요.

- 말씀듣고 보니 꽤 시급한 문제같은데 언론이나 정부쪽에 이런 이야기를 해 보셨는지요.

수도 없이 얘기하는데 요새 시국이 그래서인지 모르겠으나 언제든 문화정책은 만날 꼴등이에요. 정부시책 중에서는 뒤떨어진다고 봐요. 수년간 말하고 부탁했는데도 지금까지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요. 나 혼자라도 싸워야지요. 2천여 만원 제 사비를 들여서 예산서를 만들었어요. 그만큼 필요하다는 얘기에요. 우리가 아주 간곡하게 요청서를 썼어요. 요청서하고 예산서하고 기능인들 서명 날인한 것 까지 책을 만들어서 해놨어요.

- 숭례문이 내년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이 숭례문은 선생님의 19대 조부께서 건립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선생님이 다른 분들과 함께 도편수 후보로 올라있는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내가 했으면 좋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내 개인의 욕심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숭례문은 국보 1호고 참 소중한 건축물이에요. 우리나라에 5천 여 문화재 기능인들이 있습니다. 나보다 더 기능이 훌륭한 분들도 같이 참여하시라는 뜻에서 기능인 전원이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문화재청에서 해주셨으면 했어요. 그래서 요청서를 올렸더니 청장님께서 승인을 하셨습니다.

- 여럿이 하면 숭례문에 대한 기록도 많이 남길 수 있겠네요.

일본사람들은 우리나라 문화재나 유구를 전부 조사해서 자기들이 갖고있고, 그걸 책, 사진첩으로해서 우리나라에 되팔고 있어요. 그런데 숭례문이 국보 1호 아닙니까. 우리는 기록이 없단말이에요. 숭례문은 그렇게 하지 말자 이거에요.

- 숭례문은 그래도 1960년대 초에 한번 해체ㆍ복원공사를 거쳐서인지 자료가 많이 있지 않나요?

아직도 600년 전의 조상들이 형성해 놓은 이 건축물에 대해서 다 모르는 것이 있단 말이에요. 이런 것들을 다 배워가면서 수작업으로 기록에 남기자는 거에요. 다큐멘터리식으로 보관할 수 있지 않냐는 얘기입니다. 이 당시에 누가 고쳤고, 무슨 나무를 썼고 이런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면 후손들도 다 보고 배우고 집을 뜯어보지 않아도 다 알것 아닙니까.

- 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 회장을 맡고 계신데요. 현재 우리나라 문화재 기능인들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장인들이 얼마나 소외되어 있습니까…. 장인 중에는 문맹자도 있습니다. 84살인 분이 제자로 있는 곳도 있어요. 그런 분들이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게 장인, 기능인이란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시대에 따라가지 못하니까 전통장인들이 그만큼 소외되어 있다는 거에요. 많이 소외되어 있어요.

- 문화재기능인의 자긍심 고취나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어떤 노력들이 있어야 할까요?

장인들이 기능적인 대회를 한다든가 그럴 때 대통령상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미술이나 다른 계통에는 대통령상이 널려 있어요. 3만여 기능인이요, 등록된 5천여 기능인들의 숙원사업이 뭐냐면 전통건축용어사전, 대통령상, 전수교육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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