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런 일을 합니다(내가 허풍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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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런 일을 합니다(내가 허풍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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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5.1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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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의 첫 해외 사업, 라오스 oda 사업의 의미

라오스 oda 사업은 동남아에서 오랫동안 자이카(한국은 코이카 모두 외교부 산하다)를 통해 국제협력 사업을 진행해 왔던 일본에게 치명적인 승리를 거둔 위대한 사업이라는데 국내 학자들과 세계 석학들이 공히 인정하고 있다.

 

이로써 한국 문화재청의 역량이 세계 속에서 빛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 모든 일을 기획했던 것이 나이다.

 

 

CPN문화재TV 이재호 국장(사진=CPN문화재TV)
CPN문화재TV 이재호 국장(사진=CPN문화재TV)

 

 

외교적으로 한국이 일본과의 보이지 않는 학술 경쟁에서 승리라는 의미를 가진다. 특히 이번에 문화재 재단의 발굴 성과는 이를 뒷받침한다.

 

일본은 오래전 삼십년 전부터 자이카를 동원해 해외 원조 사업을 해오면서 학술적 기반을 구축했지만 홍랑시다 유물 발굴로 그 시간과 학술적 성과가 공염불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안이라는 일본의 학자가 나를 염두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끊임없이 내가 라오스를 드나드는 것을 감시한다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렸다.

 

그 뿐이랴, 중국 역시도 나를 감시한다. 그건 문화재와 다른 분야에서 중국은 나를 경쟁상대로 여기기 시작했다.

 

어쨌든 아, 한국의 기술과 학술적 역량이 이 정도일 줄이야, 하며 일본 학계는 놀라고 말았던 것이다.

 

이 홍랑시다의 발굴로 한국 문화재청의 운용 능력(발굴, 복원 등 모든 문화재 분야)은 일본을 앞섰다.

 

이로써 국제 학계는 한국의 능력을 일본보다 한수 위라는 사실을 인정안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외교의 승리로 이어진다. 일본을 외교무대에서 누른 것은 아마도 최초일 것이다.

 

실질적으로 우리가 라오스를 도와준 것은 사실이지만, 문화재청과 외교부가 형성한 다른 부가가치를 따졌을 때 라오스에 우리는 엄청난 빚을 지게 된 셈이다.

 

문화재청이 홍랑시다를 발굴하면서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 더불어 내가 라오스로 여행을 가지 않았다면, 또한 내가 모시던 정병국 장관이 광저우로 달려가고 그 당시 라오스에 오지 않았다면, 더불어 부아손 총리와 회담을 하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은 이루어 질 수 없었다.

 

또 한명의 숨어 있는 영웅은 바로 박영근 국장이다.

 

당시 그는 문화재청 국장으로서 라오스로 달려와서 통사 청장을 만났고, 그리고 유물복원 대상지로 홍랑시다를 결정한 인물이다.

 

(故) 통사 사야봉캄디 전 라오스문화재청장(사진=CPN문화재TV)
(故) 통사 사야봉캄디 전 라오스문화재청장(사진=CPN문화재TV)

 

 

물론 그는 공무원이었으므로 해야 할 일을 했다고 그는 늘 겸손해 한다. 그야말로 산증인이다.

 

또 한명의 산 증인이 바로 연합뉴스 김태식 기자였다. 그는 나와 동행해서 당시 라오스로 날아왔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생생한 장면을 취재 보도했다.

 

그리고 보도는 모든 언론 방송을 통해 전파되었다.

 

이 일이 있은 직후 정병국 문방위원장은 문화부 장관이 된다.

 

이 많은 사람들이 증언하는데 이번에 문화재청, 재단은 자료를 남기면서 이런 부분을 두루뭉술 넘어가고 말았다.

 

민간의 공공외교를 공적인 기관에서 변형시키고 자신의 성과만 포장했다. 이는 국가권력에 의한 조작이다.

 

나는 이 같은 점을 항의했다.

 

당시 재단의 이사장이었던 진옥섭에게 전화를 해서 진위를 물어보려 했으나 그는 나를 회피하고 나중에 겨우 전화 통화되었을 때 사건의 진위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이 부분에서 강한 의심을 품게 되었다.

 

문화재청의 모종의 지시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게 있는데, 이 부분은 상위 기관인 문화재청의 지시가 있지 않는 한 저지를 수 없는 실수(?, 아니 일부러 조작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를 감히 무슨 배짱으로 감행한단 말인가.

 

민간이 주축이 되어 외교적 역량을 발휘했는데, 문화재청 역대 청장이 바뀔 때마다 나에게 '문화유산 상'을 주겠다고 매번 앵무새처럼 떠들어댔다.

 

나는 거절했다.

 

왜냐하면 표창장 한 장으로 나의 노력을 평가절하하고 싶지 않았다. 미리 말했듯이 나는 현재까지 라오스를 199번 다녀왔다. 그리고 오지 탐험을 대략 19 - 25, 그리고 전국 여행을 60여 차례, 그런 기록을 표창장 한 장으로 대신하려는 문화재청의 의도를 알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외교부의 행태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오늘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려드린다. 어쨌든 그 말은 접어두기로 하자.

 

라오스 정부가 나를 일본 이안 박사를 제쳐두고 "국가가 인정한 민간대사 대표"로 선임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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