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3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연재] 차(茶)의 이야기 3 [연재] 차(茶)의 이야기 3 만덕산은 예로부터 야생차가 군락을 이루며 자라나는 곳이다. 해풍(海風)을 맡고 자란 차는 향이 곱고, 신색이 훤했으며, 음다(飮茶)의 풍미가 절로 느껴져 차를 아는 사람은 곧잘 찾았다. 특히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이전에는 찻그릇을 굽는 가마가 숱했다. 물론 임진왜란의 여파 많은 도공들이 왜놈들에게 잡혀갔지만, 그래도 차의 명맥은 끊어지지 않고 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다산 정약용은 '아이 같은 마음을 가져라' 라고 혜장선사에게 아호를 내렸지만, 혜장의 성징은 인근 해남에서도 소문날 정도로 괴팍했다. 세수(세속의 나이) 30살에 대흥사 차의 이야기 | cpn문화유산 문화재TV | 2020-07-02 11:27 [연재] 차(茶)의 이야기 2 [연재] 차(茶)의 이야기 2 만덕산(萬德山) 한 자락의 백련사(白蓮寺) 주지였던 혜장 선사는 기실은 조정에서 높은 벼슬을 한 정약용에게 학문의 깊이를 묻고자 자리를 청했다. 백련사는 해남 인근 대흥사의 유서 깊은 사찰의 학문적 도량으로 알려진 유명한 곳이다. 백련사(白蓮寺)는 신라 문성왕 때 무염 국사(801~888)가 산 이름을 따라 만덕사(萬德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이후 고려 시대 일반 백성과 스님들이 함께 퇴락한 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결사 도량으로 거듭난 곳으로, 고려 희종 7년째인 1211년에 원묘 국사 요세(1163~1245) 스님에 의해 중 차의 이야기 | cpn문화유산 문화재TV | 2020-07-01 15:13 [연재] 차의 이야기 1 [연재] 차의 이야기 1 다산(茶山) 정약용은 일컬어 “술을 마시는 민족은 망하고 차를 마시는 민족은 흥한다.” 라고 차를 찬양했다. 조선 후기 차 문화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이 다산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정약용, 다산의 호는 원래 다산이 아니었다. 어릴 적 천연두를 앓아 눈썹이 세 개라 하여 삼미자(三眉子)라 하였고, 유배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철마산인(鐵馬山人), 성격의 약점을 치료하려 여유당(與猶堂) 등 생전 호가 12개나 되었다. 그의 독특한 호를 하나 꼽으라면 바로 스스로 지어 부른 “다산”이라는 호이다. 황서영 백서 사건(辛 차의 이야기 | cpn문화유산 문화재TV | 2020-06-30 13:42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