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선인들의 담소문화를 상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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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선인들의 담소문화를 상상하다
  • 이경일
  • 승인 2020.06.12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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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930호 청자 퇴화초화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및 승반

주자는 술이나 물 등의 액체를 담아서 따르는 용도이며, 승반은 주자를 받쳐서 주자에 담긴 것을 보온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다. 보물 제1930호 퇴화초화문 청자는 퇴화(堆花) 기법으로 자유로운 필치의 초화문(草花文)이 장식되었으며, 과감한 장식 문양이 돋보이는 걸작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다.

보물 제1930호 청자 퇴화초화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및 승반(사진=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1930호 청자 퇴화초화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및 승반(사진=국립중앙박물관)

 

보통 식물이나 동물, 인물 등 사물의 형태를 본떠 만든 청자를 상형청자(像型靑磁)라고 하는데, 주자에 표주박 모양이 그대로 담긴 상형청자다. 맑고 푸른색에 표주박 모양 주자와 발 모양 승반이 한 벌을 이루고 있어 청자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고려청자의 무늬를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청자 고유의 유약 색깔을 강조한 비색(翡色)청자, 무늬를 새기거나 도드라지게 하는 음각과 양각 기법, 표면을 긁어내고 그 곳에 다른 색을 채워 넣는 상감 기법 등이다. 대부분 비색청자와 상감청자를 고려청자의 대표로 알고 있지만, 보물 제1930호 퇴화초화문 청자에 쓰인 철화(鐵畵)와 백화(白畵) 기법도 고려청자의 한 부분이다.

 

주자와 승반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독특한 기법으로 표현한 무늬 때문인 듯하다. 철화와 백화를 이용한 퇴화 기법은 자연스러우면서도 강렬한 느낌의 초화문에 생동감을 불어넣으며, 주자의 몸체 곳곳에 번갈아 있는 흑백의 문양이 대비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주자와 승반, 뚜껑의 분리 모습(사진=국립중앙박물관)
주자와 승반, 뚜껑의 분리 모습(사진=국립중앙박물관)

 

특히 표주박모양 주자의 아랫박의 문양은 초화(草花)를 그린 백원문(白圓文)과 당초(唐草)를 음각한 백원문대(白圓文帶)의 두 개의 구획으로, 이들 문양의 바탕은 각각 구획한 것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바탕을 커다랗게 마련하고 각 문양 사이의 공간을 긁어내어 여백감을 표현한 것으로 보기 드문 경우이다.

 

완전한 조합과 구성, 당당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몸체, 자유로운 필치로 정성스럽게 그린 문양 등 세련된 퇴화 기법은 당대 장인의 손길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또한 퇴화 기법을 대표할 만한 최고 수준의 작품으로 손꼽을 수 있다.

 

개성 부근에서 출토되었다고 하는 풀꽃무늬 표주박모양 청자에서 고려시대 귀족들이 주자에 담긴 술을 따라주며 즐거이 담소하는 모습이 저절로 상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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