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 일상에 피었던 민속문화의 꽃 “지화(紙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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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일상에 피었던 민속문화의 꽃 “지화(紙花)”
  • 이경일
  • 승인 2020.06.16 15: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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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에서 피어나는 꽃

올해는 유래 없는 코로나 19의 심각한 위기 속에서 국가나 민간의 중요한 행사가 대부분 취소되거나 미뤄졌다. 코로나 19로 취소된 연등행사는 전 세계에 중계 될 만큼 독특한 우리민족의 고유 행사이다. 긴 연등행렬 속, 다채로운 등과 하나 되어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지화(紙花). 또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해마다 거행되는 수륙재와 영산재에서도 지화를 통해 재의식의 숭고함이 한층 고조됨을 알 수 있다. 지화는 우리 민족의 전통행사에 빠질 수 없는 민속문화의 가장 밑바탕에 있다.

2018 연등행사 지화장엄(사진=CPN문화재TV)
2018 연등행사 지화장엄(사진=CPN문화재TV)

 

종이를 가지고 피어난 꽃을 살펴 그대로 만들어낸 것. 지화는 정교한 예술품으로서 또한 미()를 추구했던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로 대표되는 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지화 제작을 위해 전통 한지에 대한 이해, 염색의 방법과 색채의 구현, 꽃마다 다른 제작기법 등, 오랜 수련기간에 걸쳐 체득되는 다양한 기술과 기능을 가진 장인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예술품이다.

 

전통적인 종교의례와 궁중의식, 민간잔치, 꽃상여 등 우리 민족의 일상적인 민속문화로 지화는 한국 전통공예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며 존재해왔다. 하지만 오늘의 우리는 지화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

 

- 궁궐에 꽃을 관리하는 관리가 있다?

지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손으로 만드는 노동의 행위를 꽃일이라고 하였다. 꽃일의 재료가 보통 종이였으므로, 꽃일 하는 사람을 일러 지화장라고 불렀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중요한 의식이 있을 때 꽃을 올리고 나눠주고 꽂고 관리하는 관직으로 분화관(分花官) 제도가 있었으며, 꽃을 전담하는 관리를 화관이라 불렀다. 이들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전문직 종사자로 바로 장인이었다.

 

- 전통지화의 황금기는 언제인가?

고려시대부터 궁궐 어좌 옆이나 연회장에 장엄한 것으로 왕의 권위를 상징한 것이 준화(樽花). 고려시대의 궁궐장엄 형식이 수륙재에 장엄된 것은, 준화로 꽃을 하라고 한 기록으로, 고려시대 궁궐장엄이 조선시대의 궁궐과 불가로 이어진 것임을 짐작케 한다.

고려시대는 전국에 걸쳐 사찰이 3천여개나 창건되었을 정도로 불교가 호국불교로 발돋움하였다. 왕실과 귀족은 물론 서민들의 지주로써 불교문화가 꽃핀 가운데, 팔관회와 연등회, 왕실의 주요 의례와 국가 종교의례에 장식과 장엄문화로 전통지화는 대중화가 되었다. 또한 화려한 고려의 꽃장식문화는 조선으로 이어졌으며, 조선시대 궁중에서 거행됐던 궁중의례와 불교의례, 민가 등에서도 빠질 수 없는 우리 민족 고유의 장식문화로 자리매김 되어 전통지화의 꽃을 피운 것이다.

2018 부여 수륙재(사진=CPN문화재TV)
2018 부여 수륙재(사진=CPN문화재TV)

 

- 선조의 장식문화, 지화 이대로 잊혀 지는가?

1910년부터 1945년 광복에 이르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조선의 각종 고고학적 유적과 건축물을 답사한 후 사진 자료를 모아 만든 조선고적도보에는 1920~30년대 정도 쌍계사 법당에 장엄된 지화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송광사 법당의 지화 모습과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의 모습 등에서, 그 당시에도 많은 지화가 대중화속 전승되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의 미()를 추구했던 꽃장식 문화 전통지화장엄’. 궁중은 물론 사찰과 민가, 굿판에서 전승되어져 왔던 우리 고유의 민속문화는 근대에 들어 원예문화의 발달로 잊혀져버렸다. 사계절 어느 때나 원하는 꽃을 찾을 수가 있게 되며 대중의 관심 밖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전통지화가 거의 사라지는 요즘, 우리 전통문화에 관련한 자각과 함께 지화문화를 보존하고 전승하고자하는 사명감을 가지고, 한지에 천연 염색을 하여 꽃을 만들며 전통을 고수해가는 지화장이 있다.

불교지화장엄전승회를 이끄는 지화장 정명스님(심갑식)은 전통 지화의 전승도 중요하지만 시대가 변한 만큼 오늘을 대표하는 장엄용 꽃 개발도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으로 오래되어도 변하고 바래지 않는 연꽃을 5년여의 연구 끝에 개발해내기도 했다.

지화, 연꽃을 만드는 모습(사진=CPN문화재TV)
지화, 연꽃을 만드는 모습(사진=CPN문화재TV)

 

- 전통지화의 맥을 잇는, 지화장 정명스님의 오늘

전통지화를 고수해온 긴 시간, 이미 지문이 사라져버린 투박한 손을 감추며 정명스님은 전통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자는 정신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불생화와 같은 느낌의 연꽃을 만들어 내는데 꼬박 10여 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조화 연꽃이 고려나 조선시대의 지화에 버금가는 이 시대의 불교문화로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지화 문화가 후대까지 이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이야기하며 수줍게 웃는다.

 

정명스님은 매년 전시와 세미나를 개최하고 전통지화를 직접 만들어 법당장엄과 불단에 올리는 공양지화, 연등회 관불단장엄의 부채난등, 일곱 송이 연꽃, 팽이난등 그리고 수륙재, 예수재의 작법 꽃 그리고 민간이나 사찰의 화혼예식에 칠경화, 불교장례의 영결식장 장엄과 영정장엄, 위패장엄을 진행하고 있다. 잊혀져가는 전통문화의 어제와 오늘을 면밀히 기록하고, 전승활동을 통해 미래로 잇기 위한 여정을 밟고 있는 것이다.

지화로 만든 여러꽃이 아름답다(사진=CPN문화재TV)
지화로 만든 여러꽃이 아름답다(사진=CPN문화재TV)

 

지화는 단순히 꽃을 통하여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기능만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상징을 보여주는 우리 전통 문화로서 당시대의 문화와 시대적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문화역사의 중요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

 

이미 수 십 년 전부터 전통지화장엄의 전승자들도 줄어들어, 전통지화의 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한 것이 한국전통지화의 현실이다. 이 문제는 한 개인이 해결할 수 없기에 국민 모두가 전통지화에 대한 깊은 인식을 갖고, 전통지화를 지켜가는 보존회와 중요무형문화재 정책을 주관하는 정부 부처가 긴밀하게 협조하여 전통지화의 무형문화재화를 이루어 사라져갈 위기에 있는 전통지화를 전승과 보존으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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