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再발견 제161편 '서울 선농단(서울 先農壇)', 문화재 재발견의 스케치
선농단은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고 일컬어지는 고대 중국의 제왕인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를 주신으로 제사 지내던 곳입니다. 우리나라의 선농제는 삼국 신라시대 때부터 행해졌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때부터 이미 농사의 삼신(三神), 즉 선농과 중농, 후농에 제사를 지내는 등 선농제향을 행했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고려시대에도 선농제는 행해졌는데 중국 의식을 따라 정월 해일에 적전(籍田)에서 신농씨와 후직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성종 2년(983) 정월 신미일에는 환구단에서 기곡제를 지내고 같은 달 을해일에 적전에서 제사를 지내고 친경례를 거행했습니다. 그러나 고려시대는 전반적으로 불교나 팔관회와 같은 고유 전통에 의존하는 바가 컸기 때문에 이 시대의 선농제는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시행됐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 예법에 따른 선농제가 국가의 주요 전례(典禮)가 되었고 그 의미도 강화됩니다. 태종은 선농제의 제향일을 정월 길(吉) 해일에서 경칩 이후 길한 해일로 바꿔 거행하고 친경의계를 제정했고, 중농·후농제를 폐지하고 대신 삼신을 대표하는 선농제만 모셨습니다. 태조 1년(1392)에는 한양 근교에 왕이 친경(親耕)하는 전지(田地)인 동적전을 설치하고 경작했으며 이를 관장하여 경작과 수확을 살피는 고직인 적정령이 내려지고 승(丞)이 설치됩니다.
태종 14년(1414)에는 선농제를 위한 제단의 단과 유의 설치 규정이 마련되며, 세종 재위 당시에는 친향선농의와 친경의주를 제정하고 《국조의례의》, 《길례》에 선농단과 경작에 대한 의식을 규정했습니다. 성종은 《국조오례의》의 친경의례의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성종 7년(1476)에는 친경대를 신축하고 처음으로 친경례를 거행합니다.
영조 43년(1767)에는 친경의궤를 편찬하고 권농과 고례를 특히 회복하고자 합니다. 일제강점기 직전인 순종 3년(1909)에는 사직단으로 위패가 옮겨지고 선농단 일원이 국유화되면서 제향이 폐지됩니다. 이후 일제는 선농단이 위치한 곳에 청량대(凊凉臺) 공원을 조성하고 경성여자사범학교를 세워 선농제의 역사·문화적 의미를 말살했습니다.
폐지된 제향행사는 1979년에 지역주민으로 구성된 선농단친목회에 의해 비로소 재개되었으며 1992년부터는 동대문구에서 인수받아 매년 선농제를 모시고 있습니다. 선농단은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로 이어져온 선농제를 치르던 장소로 농사일의 소중함을 알렸던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CPN문화유산은 사적 제436호 ‘서울 선농단’에 대해 알아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CPN문화유산은 앞으로도 숨겨진 문화재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문화재를 국민과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생생한 문화재 이야기를 전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