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이 불교 사찰을 복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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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이 불교 사찰을 복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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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6.12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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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성 목사님(왼쪽)과 이재호 국장(오른쪽)
정하성 목사님(왼쪽)과 이재호 국장(오른쪽)

 

개신교 목사님이 불교 사찰을 복원하려고 한다면 믿을까. 그런데 사실이다.

 

소설암 터는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설곡리에 있는 절터이다. 고려 후기 승려 원증국사(圓證國師) 보우(普愚)[1301~1382]가 소설암(小雪庵)에서 머물다 입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동국여지지등에는 소설암에 권근(權近)[1352~1409]이 찬한 탑비가 있다고 전한다(출처=디지털가평문화대전)

 

92세 노구의 정하성 목사님(경기도 양평 강상면 민족사박물관 건립 추진)이 태고 보우 스님의 열반 성지를 복원하고 그 정신을 잇겠다고 나섰다. 뜻하지 않게 계룡 사무실을 방문해서 첫마디에 "태고 보우 선사의 마지막 열반 성지가 자신의 문중(동래 정씨)에 속한 땅에 방치되어 있으니, 내 죽기 전에 이 사찰을 복원하여 후손들에게 전하고 싶소."하면서 찾아온 것이다. 태고 보우 스님에 대하여 상당한 공부도 하고 오신 듯, 가지고 온 자료만도 큰 가방 하나에 가득했다.

 

목사님은 전에 창원 황씨 문중의 수락당(영주) 건축물의 문화재 지정에 도움을 줬다는 사실을 어디선가 듣고 오신 듯했다. 92세면 무언가 기억하기도 어려운 나이일 텐데, 모든 정황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나는 놀랐다.

 

땅속에 묻혀 있다가 발견된 태고 스님의 비석, 석종형 승탑, 그리고 비문의 내용과 부도는 물론이고, 수없이 발견되는 기와 편과 도자 편까지. 목사님의 기억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심지어 강원대학교에서 2003년에 일부 구간 유구 조사를 실시했던 것까지도. 목사님의 기억은 선명했다.

 

어린 시절의 일부터 최근 소설암 터에서 벌어진 모든 상황까지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데, "그만. 이게 나의 마지막 사업이요"하는 말씀이 부연 설명 없이도 진심임이 분명해 보였다. "종교 간 갈등이나 종교적 문제로 번질 수도 있는데…"라며 주춤거리는 나에게 목사님은 오히려 종교의 갈등을 떠나서 태고 보우 선사는 시대의 위대한 스승이니, 그 정신은 종교가 아니더라도 모두 살펴야 하는 후손들의 몫이라고 강변했다.

 

그래도 목사님이 스님의 열반 성지를 복원한다는 것은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을 듯하다고 말씀드렸지만, 태고 보우 스님의 모친이 바로 동래 정씨라고, 그래서 그 산에서 열반한 것은 우리 정씨 문중의 자랑이라고 재차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에 후손들이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자신이 죽기 전에 소설암을 꼭 복원하고 싶다는 염원을 말했다.

 

이를 계기로 종교 간 화합을 다지겠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으니 제발 도움을 달라는 목사님의 말씀은 정말 간절한 마음 그 자체였다. 그래서 나는 기와, 석종형 승탑, 그리고 부도 전문가와 7월 중에 가평군 설악면 설곡리 현장을 방문하기로 약조하고 목사님을 서울 가는 기차역으로 모셨다.

 

한동안 '아, 이게 맞는 방식인 건가. 목사님이 사찰을 복원하는 게.'하고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종교는 상관없고, 모든 것은 다 하느님의 뜻이라는 목사님의 말씀이 귓전에 맴돌았다.

 

참고로 태고 보우 스님은 홍주가 본향이다. 내 고향과 같은 동향 분이다. 나도 오며 가며 태고 보우 스님에 대하여 자주 들었던 터다. 사찰을 복원한다니 태고종에서도 찾아왔고 스님도 몇 분도 찾아왔고 교수들도 몇 분 조언을 해줬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그래서 문화유산을 전문적으로 취재하고, 문화유산 복원에 참여해서 숱한 일을 했다는 말을 듣고 계룡까지 찾아왔다며 목사님은 내 손을 꼭 잡았다.

 

스님들과는 이런 일을 더러 했지만, 기독교 목사님하고 사찰을 복원한다는 사실이 참 어색해서 아직도 나는 실감이 나질 않는다. 그러나 목사님이 하신 말씀만은 묵직하게 나에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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