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은 ‘세계 문화유산’, 고려왕릉은 ‘애물단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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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은 ‘세계 문화유산’, 고려왕릉은 ‘애물단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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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9.0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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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단절, 어떤 특정 시기를 집중 조명하는 데에서부터 비롯되는 역사의 양면성이다. 우리나라 고려왕릉은 남한에 5, 그중 강화군에만 4기가 사적으로 산재해있다. 고려 가릉(고려 24대 원종비 순경왕후), 고려 곤릉(고려 22대 강종비 원덕태후), 고려 석릉(고려 21대 희종), 고려 홍릉(고려 23대 고종)이다.

 

고려의 송악(개성)이 도읍지였던 탓에 대부분의 고려왕릉은 북한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왕건의 무덤 역시 평양 인근에 있고, 그밖에 다른 왕릉도 북한 지역에 있다. 참고로 현종의 왕릉은 영릉이라 하여 북한 지역에서 사적지로서 보존지역으로 분류되어 있다.

 

1994년 북한 정부가 발굴조사 후 중개축한 고려 태조 왕건의 현릉(사진=조선의오늘, 출처=남북경협뉴스)
1994년 북한 정부가 발굴조사 후 중개축한 고려 태조 왕건의 현릉(사진=조선의오늘, 출처=남북경협뉴스)

 

우리의 빛나는 역사에는 고려가 존재했었고, 고려의 역사에 이어 조선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남한 지역의 고려왕릉은 그 흔한 관리 사옥도 지어지지 않은 채 천시되거나 잊힌 것이 현실이다.

 

국가유산청은 우리나라의 국가 정체성을 말하는 기관이다. 몇 기 없는 고려의 왕릉은 사적임에도 그에 맞는 관리와 정비가 되고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시급히 정비하고 관리해야 하며, 또한 역사 교과서도 고려왕릉의 정체성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현재 조선의 왕릉과 비견되는 고려의 왕릉에 대한 예산 투여 및 관리가 부실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몽골의 침략으로 부득이하게 강화도로 옮겨간 고려의 수도, 그 국가 기반 시설과 왕릉의 정비에는 예산이 태부족해 강화도를 찾는 국민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강화도의 청련사는 그중 고려 고종의 원찰(願刹)이었지만, 현재 어떤 도움도 없이 사찰 자력으로 매년 제사만 지내는 것에 그치고 있다.

 

또한 강화군과 국가유산청의 관심 밖이라 그런지 고종의 원찰로서 그 위세에 맞는 행사의 격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고려 시대 제례에 대한 연구도 없었고, 그저 최근 방식으로 제를 지내는 흉내만 내는 실정이다.

 

사찰 주변의 수 백 년을 더불어 천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은행나무와 수많은 보호수 중 그 어느 한 그루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지 못했으며, 대웅전 즉, 큰 법당에는 보물 불상(보물 제1787)이 모셔져 있지만, 뒤쪽 석축은 기반이 무너져 배가 잔뜩 부풀어 올라 있다. 언제 어느 때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는 실정이다. 사찰에서는 궁여지책으로 석축이 밀려 나오면 임시방편으로 지탱하는 것에 급급하고 있다.

 

요즘처럼 비가 왔다 하면 심각한 폭우로 이어질 기후 현상에서, 강화도는 어느 지역보다도 강수량이 높은 데, 일제시대 때 겨우 그 흔적만 갖추어 놓은 석축은 조사보고서 한 장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 또한 석축 상태를 모니터링한 결과물도 없다. 무너지면 큰 법당의 벽을 치게 될 테고, 그러면 보물 불상의 엄청난 훼손으로 이어질 게 뻔하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격이 될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청련사와 고려 국왕의 무덤인 홍릉’. 이는 단적으로 고려의 문화유산이 한국 사회에서 홀대받고 있다는 반증이다. 고려가 북한 지역, 즉 개성을 중심으로 한 국가여서 그런가 싶다. 문화유산에도 남북 이념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가?

 

우리는 후손들에게 거란과 몽골에 맞서 싸운 강인했던 고려의 역사가 위대하다고 역설하지만, 그 위대함을 어떤 방식으로 후손들에게 설명하려 하는가. 서둘러 고려의 역사를 유일하게 간직하고 있는 강화도의 모든 왕릉을 조사하고 체계적인 보존 대책을 세워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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