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떨어진 시민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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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떨어진 시민의식
  • 관리자
  • 승인 2006.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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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0대 임금 연산군만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인물도






오늘 4월 6





창의문은 종로구 청운동에서 부암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위치하고 있다. 본래 청운동 일대는
골이 깊으며 물과 돌이 맑고
아름다운 것이, 마치 개성의 자하동과 같다 하여 자핫골이라 하였고, 이런 연유로 청운동 입구의 창의문을 다른 말로 자하문이라고도 불렀다.









 




▶ 불씨도 끄지 않은 채 버린 담배꽁초

 




 






창의문은 위치상 경복궁의 주산인 북악(백악)의 서쪽 날개 부분에 해당하는데, 태조 5년인
1396년 한양의 성곽과 4대문을 세울 때 4대문 사이에 만들어진 4소문 중 하나이다. 태종 13년인 1413년에는
풍수학생 최양선이 백악산의 동쪽 고개와 서쪽 고개는 경복궁의 양팔에 해당되므로 여기에 문을 내어서는 안된다는 상소를 올려 동쪽
고개에 있는 숙청문(숙정문)과 창의문을 한때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하기도 했다.



이후 세종 28년인 1446년까지도 왕명을 받아 출입하는 경우 외에는 항상 문을 닫고 열지 않도록
하였으나, 중종반정이 일어난 1506년 9월 2일에 '혜화문과 창의문을 닫으라'는 명을 내린 것으로 보아 항상 닫아 둔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창의문은 남대문,
동대문과 같은 양식의 축대를 작은 규격으로 쌓고, 그 위에 정면 4칸, 측면 2칸의 우진각 기와지붕을 얹은 견실하고 정교한 단층 문루를 세웠다.
문루 아래의 홍예 역시 아담한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도성 안 4소문 가운데 유일하게 원형이 보존되어 있어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도 상당하다.






 













▶ 한 대 밖에 없는 소화기

 




▶ 창의문 내에서 흡연하는 모습





청와대길을 따라 부암동으로 넘어가는 길목 우측에 1·21사태(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공비의 청와대 습격 사건) 때 순직한
故 최규식 경무관의 동상이 보이고, 여기서 북악산길 산책로를 따라 50여 미터만 가면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던 창의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창의문으로 오르는 길은 산책로처럼 잘 만들어 놓았지만, 여기저기 과자봉지며
담배꽁초와 같은 쓰레기들이 어지럽게 버려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창의문 아래에 도착하니 산책을 나온 사람들과 창의문을 지나는 사람들 외에는 매우 한적한 모습이었지만 그곳에서
사람들이 흡연을 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였다. 목조 문루가 세워져 있는 창의문 아래에서 주위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은 당당하게 담배를 피우고 사라졌다. 창의문
곳곳에는 사람들이 피우고 버린 담배꽁초들이 버려저있었고, 그 중에는 불씨를 끄지 않은 꽁초들까지 있었다. 비록, 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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