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남부의 역사를 간직한 '왓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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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남부의 역사를 간직한 '왓푸'
  • 관리자
  • 승인 2015.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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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파삭 왓푸



사바이디, 컵짜이, 이 두 마디로 라오스 여행이 시작된다. 안녕하십니까? 감사합니다. 라는 라오스 말이다. 한국과 많은 부분에서 닮은꼴인 나라 라오스, 고구려 멸망 당시 왕족이었던 이정기 장군을 따라서 2만의 포로들이 당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가 그 일부가 남하해서 라오스에 정착했다는 설도 있다.


 

세계 유일의 찹쌀과 젓갈을 먹는 민족 한국과 라오스, 목제기가 사용되고 있고, 아직도 라오 몽족은 명절날이면 색동저고리를 즐겨 입는다. 유전자의 상당부분 우리 민족과 일치한다는 발표도 있었다. 지구인이 죽기 전에 꼭 가보아야 할 세계문화유산 도시 루앙프라방, 물의 도시 방비엥, 아시아 최대 사원 탈루왕, 태국에서 에메랄드 불상을 가져간 왓 파케오, 왓 시사켓 등 불교 국가답게 도시 곳곳에 유서 깊은 사원들이 즐비하다.


 

라오스는 최근 들어 열풍이라고 할 만큼 한국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이들은 주로 수도 비엔티안을 중심으로 방비엥과 루앙프라방을 돌아보는 일정으로 관광을 즐긴다. 하지만 소문과 다르게 볼 것이 없다고, 시내 몇 군데 돌아본 것으로 귀국 길에서 라오스를 마치 모두 알아버렸다는 듯 투덜대곤 한다.


 

하지만 진짜 소중한 볼거리, 유적지는 바로 비엔티안에서 남동쪽으로 500㎞ 떨어진 빡세 지역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앙코르와트 유적보다 무려 3세기 앞선 유물로 200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참파삭 주의 왓푸다. 전문가들은 건축물의 섬세한 조각 기법이나, 건축물의 형태로 보아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유적이 바로 왓푸라는데 주저 없이 동의한다.


 

▲참파삭 왓푸



왓푸를 가기 위해서는 육로도 가능하지만 길 사정도 그리 좋지 않고 시간도 너무 걸린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면 수도 비엔티엔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반 정도에 위치한 팍세부터 가야 한다. 그곳이 바로 참파삭 주이다. 라오스의 국화가 바로 이 참파삭 주에 흔하게 피어난 참파 꽃이다. 팍세로부터 참파 꽃으로 즐비한 메콩강 강변을 따라 차로 1시간여를 달리다 보면 그 웅장한 자태의 왓푸가 나온다.


 

왓푸는 그 옛날 남부를 호령하던 크메르제국의 왕궁이자 사원이다. 크메르왕국은 10세기부터 이곳에서 힘을 키워 캄보디아와 태국에 이르는 거대한 제국을 완성하였다. 이후 15세기 시암족이 불교를 전파하면서 힌두교 사원에서 다시 불교 사원으로 변모하여 힌두교 문화와 불교 문화가 혼재되어 있는 형태이다. 이런 형태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와 비슷하다. 앙코르와트보다 화려하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쌍둥이처럼 닮은꼴이다. 일종의 앙코르와트의 원형이랄까. 당시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참파삭 왓푸



왓푸는 앙코르와트 이전에 계획되었던 고대 도시 중심지로서, 왓푸를 건설한 옛 사람들은 이 도시의 성스러운 성격을 반영하기 위해 도시 경관을 세심하게 계획한 것을 알 수 있다. 푸카오 산기슭에 있는 계단식 사원 단지는, 사당이 있는 바위 테라스 위에서 신선한 물이 솟아나는 샘까지 동서로 걸쳐 있다. 산꼭대기의 자연의 링가(linga, 힌두교에서 숭배되는 남근상)에서 사당까지 연결되는 축이 사원 단지의 배치 기준이었다.



왓푸 유적지를 돌아보는데 대략 한나절 정도가 소요된다. 우선 주 건물지의 층계식 사원 건축 양식이 이채롭다. 푸까오 산 정상까지 점점이 쌓아놓은 석축이 그 위용이 어떠했을지 잘 말해준다. 군데군데 허물어진, 이처럼 프랑스 식민지 시절 다양한 문화재들이 도굴되고 반출되었다 하니 우리 한국과 그런 아픈 역사는 그 맥을 같이 하는 듯하다.



 
▲참파삭 왓푸



왓푸는 전 세계 고고학의 경연장이 된 지 오래다. 일본, 독일, 프랑스, 인도 등 고고학 선진국이 왓푸 지역을 발굴하고 학술 자료를 취합하는 등 경쟁이 치열하다. 이곳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청년들도 있다. 3년 전 라오스 문화부와 한국의 문화재청은 문화유산 복원에 관한 MOU 맺고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이다.



 
▲ 흥난시다 한국 현장사무소




현장을 방문했을 때는 한국의 세 명의 젊은이가 왓푸 지역에서 1km 정도 떨어진 홍난시다 유적지 발굴에 여념이 없었다. 트랜치를 넣은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지난 10월부터 2차 발굴이 시작되었는데, 우기가 오기 전인 올 4월이면 발굴을 모두 끝내고 본격적인 복원사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흥난시다 복원현장




한국의 문화유산 해외 진출 사례 1호이다. 이에 걸맞게 한 치의 실수 없이 꼼꼼히 기록하고 분석하는 강행군을 지난 해 10월부터 지속하고 있다. 열악한 숙소, 각종 해충, 음식, 날씨 등 모든 것이 불편하지만 먼저 자리를 잡은 문화유산 선진국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흥난시다 복원현장



“오랜만에 한국사람 보니 좋습니다.”


 

첫 마디에 반갑게 덥석 손을 내미는 청년들, 여름 한낮의 기온이 40도를 오르내리고, 우기에는 길조차 가늠할 수 없다고 한다. 동남아시아 오지 중의 오지에서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닐 터이다.


 

왓푸 박물관의 관장은 한국사람 대단하다고, 처음에는 얼마 견딜 수 있으려나 했는데 놀랍다며 ‘진정성 있는 파트너’로 인식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콘 까오리 땅짜이 헤드약 행행!(한국사람 열심히 일해요. 힘내요)”



  
▲흥난시다 복원현장



홍난시다는 ‘시다 공주의 방’이라는 뜻으로, 왓푸 사원에서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유적으로 이어지는 고대길 첫걸음, 그 시작점이었다. 이 길을 거쳐 불교 등 다양한 문화가 흘러가고 흘러왔다. 앙코르 제국 시절 수많은 왕들이 메콩강 삼각주 지역의 비옥한 땅을 점령하고자 침략을 감행했다. 그 때마다 물과 바람으로 외세의 침입을 막았다고 한다. 라오스인들은 이 모두를 푸까오산의 신께서 지켜주셨다고 믿고 푸까오산을 경외한다. 고색창연한 왓푸 유적이 우리나라 기술진과 젊은이들 손에 다시 세상에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날이 머지않았다.



이제 막 깨어나고 있는 나라, 라오스. 동방의 고요한 나라가 한국이라면 남방의 고요한 나라는 라오스다. 라오스의 문화와 불교는 바로 이 왓푸를 거쳐서 인근의 폰파팽 지역을 지나 캄보디아로 전해진다.



   
▲메콩강의 노을



왓푸를 돌아 나오는 길, 메콩강을 중심으로 번져나가는 노을은 비경 중의 비경이었다. 푸까오산 너머로 밀려드는 도도한 저녁 광풍은 마치 그 옛날 앙코르 제국 시절 밀려드는 제국의 군인처럼 위용이 가득했다.


 

라오스 남부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왓푸, 이곳을 보지 않고서야 어디 라오스 여행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한국의 기술진이 복원한다니 친근감까지 들게 한다. 한 때 라오스로부터 쌀을 원조 받았던 나라인 한국, 이제 라오스인들을 위해 무언가 해줄 차례가 된 것이다.


 

다양한 문화수탈을 경험한 한국과 이웃의 태국, 프랑스 등으로부터 숱한 침략을 받았던 나라 라오스, 왓푸 유적 복원 사업은 이러한 아픈 역사를 간직한 두 나라의 혈맹과 같은 우의를 다지는 계기이자 라오스 역사의 한 페이지를 한국이 동참해서 열어가는 의미 있는 사업이다. 관광은 이런 곳을 돌아다보는 것으로 그 의미를 되새겨야 할 일이다.


 

그저 흥청망청 몰려다니고, 몰려가는 관광에서 벗어나 참파삭 왓푸에서 진정한 라오스의 참맛을 느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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