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유산, 독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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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유산, 독립문
  • 관리자
  • 승인 2004.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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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문은 사적 제 32호로 자주독립의 상징이며 우리나라 국민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유적중에 하나다.

서대문형무소로 견학숙제를 하러왔다는 최정민(15) 학생은 독립문에 대해서 묻는 질문에 “독립문은 당연히 독립운동을 하면서 독립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상징적으로 세워놓은 자랑스러운 문화재지요”라며 “볼 때마다 뭉클함을 느껴요”라고 덧붙여 말했다.

하지만 독립문, 독립신문, 독립협회의 ‘독립’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제로부터의 독립과는 엄연하게 뜻이 다르다. 1890년대의 독립과 1910년 이후의 독립은 분명히 성격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독립’이라는 단어때문에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독립문 앞에 있는 안내판에도 독립문이 '독립협회가 자주독립의 결의를 다짐하기 위하여 중국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세운 기념 석조물이다'라고만 씌여있다.

또한 독립협회를 이끌고 독립신문과 독립문을 만드는데 대표적인 인물인 서재필의 동상이 위대한 독립운동가라는 안내판의 설명으로 독립공원에 세워져있다.

하지만 독립협회는 우리가 흔히 매국노라 알고 있는 이완용이 1898년 회장으로, 윤치호가 부회장으로 있던 단체였으며 이들이 내세웠던 건 ‘청으로의 독립과 일본에 대한 지지’였다.

이는 독립협회 간부들이 일본의 합방공신으로 인정받아 ‘조선은 일본의 승리로 독립해서 감사하다’고 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또한 1928년 독립문의 기초가 내려앉을 위험에 처했을 때 조선총독부에서 수리비를 지원했다는 기록도 확인되었다.

독립운동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으며 독립공원에 동상까지 서있는 서재필은 조선인 서재필로 산 시간보다 미국인 필립 제이슨으로 산 시간이 더 많았다. 독립신문에도 피재손이라는 이름으로 기고하였으며 미국인 신분으로 영어로 말을 했고 독립신문을 일본에 넘기려고 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우리는 교과서에서도 독립신문이 애국신문이라고 배우고 있지만 독립신문은 제호만 ‘독립’일뿐 일본을 지지하고 조선을 비하하는 논조로 일관되어 있다.

조국 조선을 버린 필립제이슨 서재필이 위대한 애국자로 칭송되고 있으며 그가 이끈 일본찬양 신문이 애국신문으로 포장되어 있고 그 창간일을 신문의 날로 제정하여 기념하고 있는 것이 우리 역사의 현실이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국장은“1890년대의 독립협회 활동이나 독립문은 정치적인 입장으로 바라볼 수도 있기 때문에 친일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지만 그 이후의 친일적 활동과 한계에 대해서는 분명히 지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학계와 역사단체들의 꾸준한 지적에 대한 대책에 대해 문화재청 관계자는 “요즘 워낙 시기적으로 볼 때 친일청산법등으로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뭐라고 말할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

최근 밝혀진 독립문의 현판글씨의 주인공이 이완용이라는 사실에서도 볼 수 있듯이 결국 친일의 잔재라고 할 수 있는 독립문이 잘못된 역사적 사실을 통해 100년 동안 자주독립의 상징이 되어왔다.

문화유산은 역사적 진실이 바탕이 될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

독립문과 독립협회, 독립신문,서재필에 대한 재평가와 시정이 시급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청산하지 못한 부끄러운 역사물을 통해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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