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하여 종은 울리나
상태바
무엇을 위하여 종은 울리나
  • 관리자
  • 승인 2004.12.3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섣달 그믐날 자정이면 2004년을
보내고 을유년 새해를 여는 제야의 종 타종 행사가 종로구 보신각 일대에서 열린다.


제야의 종 타종행사가 이제는 세시풍속의 하나로 굳어져 버렸지만 보신각
종은 언제부터 치기 시작했는지, 제야의 종을 33번 치는 이유와 함께 제야의 종 행사에 담겨진 아픈 역사도 되새겨 보자.







보신각 종의 역사


보신각종은 조선 세조 14년(1468)에 만들어져 정릉의
능사에 걸려 있다가, 이 정릉사가 폐사되자 원각사로 옮겨 와 사용됐다. 그러나 이 절도 폐사되어 임진왜란 이후 종각에
걸렸다가 최근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종은 조선시대에는 성문 개폐 시에, 광복 후부터 1985년까지는
‘제야의 종’ 타종에 사용됐지만 종에 금이 가 타종할 수 없어 1986년 경복궁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가, 지난 20일 내년 10월 문을 열게 될 용산 새 박물관으로 이전되었다.


고종 32년(1895)
종루가 보신각으로 이름이 바뀜에 따라 보신각 종이라 불리게 되었고, 현재의 종은 국민성금을 모아 새로 주조한 것이다.


보물 2호인 보신각종은 높이 372 cm, 너비 273cm,
무게 24톤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단일 문화재이다. 2차례 화재로 인해 손상을 입고, 음향도 다소 변했으나 주조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명문(銘文)이 남아있어 귀중한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보신각 종


매년 제야의 종 타종행사가 열리는 보신각은 태조 5년(1396)에
조성된 것으로 종을 달아 조석을 알리던 곳으로 고종 32년(1895) 이전까지만 해도 종루로 불리웠다. 그러나 임진왜란때 종루와
함께 불타버린 것을 임진왜란 직후인 1594년 종루를 재건하고 원각사에 있던 종을 불타버린 종을 대신해 내걸었다.


왜 33번을 칠까



종로 보신각에서 제야의 종을 33번 치는 것은 조선시대에 이른새벽 사대문 개방과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타종, 즉 파루를 33번
친데서 연유한 것이라고 보고있다.


4대문이 닫히고 주민 통행금지가 시작되는 이경(밤 10시경)에는 종로
보신각에 있는 대종을 쳐서 널리 알렸다. 하늘의 별자리 28수(宿)를 상징한다고 생각하여 28번 타종했는데 이를 인정이라 했고,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오경(새벽 4시경)에는 하늘이 열린다고 생각하여 33천(天)을 상징하는 33번을 타종했고 이를 파루라 했다.
이는 불교의 우주관인 28계 33천 신앙에서 유래한 것이다.


또한 33천 동서남북 사방에 각 8계층의 하늘이 있고 이 모두를 지휘하는
하늘을 선견성(善見成)이라 하는데, 우리나라를 세운 단군이 바로 이 선견성의 성주인 환인천제의 아들이므로 단군의 개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
광명이세(光明以世)의 이념이 널리 선양되기를 바라는 염원에서라는 민족적 의미를 가진 설도 있다.


언제부터 제야의 종을 쳤을까



보신각종이 오래 전에도 제야의 종으로 사용됐다는 역사적 근거는 뚜렷하지 않다. 매일 시간을 알리기 위해 종을 쳤던 조선시대에는
따로 제야의 종을 쳤을 가능성이 희박하고, 아마도 일제시대부터 타종이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