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부는 9월의 문화인물로 구한말·일제초기의 종교가이며 사상가인 '홍암(弘巖) 나철(羅喆, 1863~1916)'선생을 선정했다. 나철은 1909년 전래의 단군신앙을 재건해 '대종교(大倧敎)'라 일컫고 종교운동·국학운동·항일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나철은 단군신앙을 접하면서 유학자에서 국학자로 변신하게 되는데, 대종교의 부활을 계기로 국어·국문·국사·국교를 회복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노예적 사관에서 자주적 사관으로, 유·불 정신에서 신교(神敎) 정신으로, 한문어를 국문어로 혁신해 독립운동의 선봉에 서는 발판을 마련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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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에도 불구하고, 유교를 국시로 삼아 공식적인 언어로 한문어를 사용했었다. 한글은 '정음(正音)'에서 언문·반절·국문 등으로 명명되면서 일제 강점기를 지나 우리 민족의 자랑스런 말과 글이 되었다. 이렇게 한글이 지켜진데에도 나철의 역할이 컸다. 그는 단군교단으로부터 받은 '단군교포명서'나 '구약문류(規約文類)', 직접 쓴 노랫말 '중광과(重光歌)'등을 통해 순수한 우리말 구사능력을 구사했다. 이는 주시경·김두봉·이극로 등으로 이어져 한글 운동의 동인이 되었다. |
나철은 대종교가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비롯한 것임을 강조하며 종교적인 측면에서도 국교의식을 환기시켰다. 그는 최치원의 '국유현묘지도(國有玄妙之道)'에 나타나는 국교의식을 통해 '최치원의 풍류도야말로 국가적·민족적·영토적·문화적 통합에 의해 형성된 한국 고대의 가장 뚜렷하고 독창적인 종교·사상·문화'라고 파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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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부는 나철에 의해 주도된 국학 부흥운동이 우리 근현대사의 문·사·철을 중심으로 새로운 혁명을 일으켜 민족 정체성 확인의 근거를 마련하고, 저작권자 © cpn문화유산 문화재T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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