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은 1972년 유네스코 제17차 정기총회에서 인류가 공동으로 보존해야 할 중요한 역사적·학문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유산이 인간의 부주의로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보호협약(Convention Concerning the Protection of the World Cultural and Natural Heritage)’을 제정하면서 시작됐다.
첫 세계유산은 1978년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 제도 등 12곳이 동시에 지정됐다. 당시만 해도 세계유산에 대한 관심은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
하지만 2001년 탈레반의 ‘바미안 계곡 마애불입상 파괴 사건’이 일어나면서 세계유산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극이슬람주의 집단이 우상숭배를 없애야 한다는 명목으로 저지른 이 사건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문화유산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전 세계인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후 유네스코는 2003년 ‘바미안 계곡의 문화 경관과 고고 유적’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고 유적지 지뢰 제거, 남아있는 인공물 보호 등 3단계의 안전 계획을 주도하고 있다.
현재 유네스코는 세계유산(1972년 시작), 무형문화유산(1997년 시작), 세계기록유산(1992년 시작)으로 나눠 등재하고 있다.
세계유산은 우리가 선조로부터 받아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자산으로, 특정 소재지와 상관없이 모든 인류에게 속하는 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산을 말하며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으로 나누고 있다.
무형문화유산은 공동체와 집단이 자신들의 환경, 자연, 역사의 상호작용에 따라 끊임없이 재창해온 각종 지식과 기술, 공연예술, 문화적 표현 등을 아우르는 유산이다. 형태가 정해져 있지 않으며, 사람들 생활 속에서 녹여 나왔다는 점이 특징이다.
세계기록유산은 역사적 기록물뿐만 아니라 문화적 관습 등 다양한 세대의 기록을 담고 있으며 책, 그림뿐만 아니라 동영상과 전자 데이터 등 과거부터 최근의 다양한 기록들을 보호하고 있다.
‘바미안 석불 파괴 사건’ 등을 계기로 세계유산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등재를 위한 각국의 경쟁도 치열해졌다. 그동안은 한 국가에서 여러 건의 세계유산을 신청할 수 있었지만, 지난해부터는 한 국가당 1년에 하나의 유산만 정식 신청하도록 규제됐다.
실제로 한국은 2009년에 7가지(조선왕릉, 강강술래, 남사당, 영산재, 제주 칠머리당영등굿, 처용무, 동의보감) 유산이 한 번에 등재되었다. 하지만 2018년 규제 이후로 등재된 사례는 ‘한국의 서원’뿐이다.
우리나라의 세계유산은 이번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을 비롯해 ‘창덕궁’, ‘종묘’ 등 문화유산 13건과 자연유산인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1건이 지정돼 있으며 무형유산은 20건, 기록유산 16건이 등재돼 있다. 전 세계에는 1,100여 건의 세계유산이 등재돼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잠재목록을 거쳐야 신청 가능
유네스코 유산에 등재하기 위해서는 먼저 잠재목록에 등재돼야 한다. 잠재목록은 당사국이 앞으로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할 유산의 예비목록이다. 잠재목록에 등재가 된 후 1년이 지나야 정식적인 세계유산 등재 신청이 가능하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13개의 잠재목록이 있고, 내부 심사 끝에 올해는 세계문화유산에 ‘한국의 서원’이 등재 신청을 했다.
등재의 여부 열쇠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세계유산의 등재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이하 OUV)'이다. 특히 비슷한 세계유산이 이미 있거나 경쟁 구도에 놓인 상황에서 OUV를 증명하지 못하면 등재될 수 없다. 다른 유산과 차이 나는 독창성과 특이성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서원’도 두 번째 도전 끝에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우리나라는 첫 번째 실패 후 ‘중국의 서원과의 차이점’ ‘9개 서원의 공통점과 연속성’ 등을 증명하는 데 집중했다.
‘중국의 서원’은 관료양성을 위한 준비기구의 성격이 강하지만, ‘한국의 서원’은 학문을 공부했던 곳임과 동시에 선현의 위패를 모시고 자신의 인격을 닦는 장소라는 것을 강조했다.
또 한국 서원의 건축 유형이 정형화된 모델을 잘 유지·보존했고, 공간 하나하나에 의미와 명칭을 두는 등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한국 유교 문화의 성지임을 증명했다.
이배용 이사장 (한국의서원통합보존관리단)은 “유네스코 등재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인 OUV 즉 ‘Outstanding Universal Value’가 기준이 된다. 거기에는 완전성, 진정성이 들어 있어야 한다. 완전성이란 원형이 틀어지지 않고 유지된 것, 진정성이란 그것이 세워진 정신적인 가치와 보전을 위한 정성을 말한다.”고 전했다. 또 “우리 서원이 인정을 받은 것은 입지환경이다. 원형 터에 자연환경이 조화를 이루면서 잘 보전됐다.”라고 말했다.
세계유산, 문화유산의 중요성을 세계로부터 인정받는 것
유네스코 유산 등재의 가장 큰 의미는 세계로부터 보호해야 할 소중한 유산임을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해당 유산이 어느 특정 국가 또는 민족의 유산을 떠나 인류가 공동으로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는 중요한 유산임을 증명한 것이다.
등재됐다고 금전적인 혜택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산을 세계로부터 인정받았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 단,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처럼 당사국이 유산 보호 비용을 충당하지 못하거나 유산이 훼손될 위기일 경우에는 유네스코가 지원한다.
실질적인 이익은 세계유산 지정과 관련해 관광산업을 통한 경제적 파급효과라고 할 수 있다.
고유진 주무관(부여군 문화재활용팀)은 “백제문화지구는 부여, 공주, 익산이 함께 등록된 만큼 각 도시의 특색을 살린 관광자원 개발로 시너지효과를 거두고 있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후로 문화유산 주변에 식당이 많이 생기고 근처 리조트 예약이 늘어나는 등 관광객이 많아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한 번 등재되면 끝? 보존 노력을 하지 않으면 제외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등재 된 것으로 끝이 아니다. 세계유산 보유국은 세계유산위원회 측에 6년에 한 번씩 문화유산이 잘 유지가 되는지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정기적인 보고가 아니더라도 NGO나 시민단체가 유산이 훼손 위기에 처해있거나 가치 상실 등을 위원회에 권고하면 불시에 점검할 수도 있다.
세계유산에서 제외된 사례는 현재까지 두 건이 있다. 자연유산이었던 오만의 아라비아 오릭스(영양) 보호지역과 세계유산이었던 독일의 드레스덴 엘베 계곡이다. 오릭스 보호지역은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서식지 파괴로 오릭스의 개체 수가 복구될 수 없을 만큼 현저히 줄어들게 되자 2007년에 제외됐다. 드레스덴 엘베 계곡은 관광객의 증가로 계곡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 내부에 다리를 설치했으나, 탁월한 보편적 가치(자연적 경관)를 유지 못 했다는 이유로 2009년 지위를 상실했다.
손다희 씨(유네스코한국위원회 문화팀)는 “세계유산으로서 심각한 상황에 부닥치게 되면,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의 목록에 포함되는데 이 경우 매년 점검 및 보고가 들어간다”라며 “주로 자연재해나 전쟁 등 외부변화에 민감한 유산들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유산 보호와 주변 개발, 완충지의 활용 중요
세계유산의 보존과 주변 개발은 민감한 사항이다. 자칫하면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상실해 자격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유산은 완충지대라고 할 수 있는 버퍼존이 있다. 버퍼존은 세계유산의 규모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보통 유산의 3~5배의 크기이며, 자연유산은 더 큰 경우도 있다.
세계 각국에서는 이 버퍼존을 두고 개발 주체와 유산 보호주의자의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개발하려면 유산 훼손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 세계유산위원회에 제출해야 하는데 NGO나 시민단체가 먼저 위원회 측에 훼손 우려에 대한 확인을 권고하는 경우도 있다.
유네스코 담당자는 우리나라도 고양 신도시 개발과 관련해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중 ‘서오릉’이 버퍼존 일부와 겹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병수 주무관(고양시 도시교통정책실 도시계획과)은 “신도시 개발과 관련해 문화재공간영향 대상 지역의 일부가 포함된 것 같다. 하지만 아직 사업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내년쯤에 구체적으로 사업이 시작되면 이 문제에 대해 계속 논의될 것이다.”고 말했다.
세계유산 등재가 많다는 것은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기회가 되며 문화 강국으로서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이다. 더 나아가 관광인프라 구축을 통한 수익 창출에도 이바지할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는 내년에 ‘갯벌’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 만약 ‘갯벌’이 등재되면 자연유산으로는 2번째가 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은 14건의 세계유산과 20건의 무형문화유산, 16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취재팀 임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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