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못하는 '효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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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지 못하는 '효창원'
  • 관리자
  • 승인 2004.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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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효창동과 청파동 일대에 자리잡고 있는 효창공원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및 삼의사가 묻혀
있는 곳이지만 이보다는 단순한 휴식공원 또는 효창운동장으로 더 많이 알려져있다.



사적 제330호인 효창공원은 본래 효창원으로 조선 22대 정조의 장남인 문효세자와 그의 생모인 의빈성씨, 순조의 후궁인 숙의박씨
및 영온공주의 묘가 있었던 곳이다. 이렇게 효창원은 지금의 효창동과 청파동 일대에 걸쳐 아름다운 숲을 형성했다.



하지만 19세기 말 일제는 문효세자와 생모의 무덤을 모두 서삼릉으로 강제로 옮겨버리고 효창원을 없애 이곳을 ‘효창공원’으로 만들어버렸다.






해방과 더불어 백범 김구선생은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일본에서 고국 땅으로 모셔
문효세자의 옛 무덤 터에 국민장으로 안장하고 안중근 의사의 가묘도 만들었다.


이어 1948년에는 중국 땅에서 순국한 이동녕·차리석·조성환 선생의 유해도 의빈성씨의 옛 무덤 터에 안장하고 백범 자신도
암살된 뒤 이곳에 묻혔다. 그렇게 해서 효창원은 자연스럽게 다시 살아났다.



하지만 백범과 임시정부를 시기했던 이승만 정권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이장을 추진했다.






효창원은 유족들과 시민단체 그리고 언론의 반대로 이전은 보류됐으나 아시아축구대회 유치를 구실로 묘소
바로 앞에 효창운동장을 만들어버렸다.



차리석 임시정부 국무위원의 장남 차영조씨는 “당시 이승만 정권은 이장이 여론의 반대에 부딪히자 아시아축구대회 유치를 이유로
효창동과 청파동, 공덕동 일대 15만여 그루의 소나무와 연못 등을 없애버리고 독립선열 묘역이 조성되어 있는 효창원에 축구장을
지음으로써 백범의 발자취를 없애려했다”고 말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박정희 정권은 이들의 무덤을 서오릉으로 옮기고 골프장을 지으려다가 이역시 유족들과 시민들의
반대로 무산되자 묘역 주변에 갖가지 이질적인 기념물과 시설물들을 세워놓았다.


효창공원 내의 묘역 위쪽으로는 북한반공투사 위령탑과 육영수 경로송덕비, 원효대사 동상등이 자리잡고 있다. 이는 모두 묘역이
조성된 후에 박정희 정권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또한 대한노인중앙회관이나 서울시노인복지관, 어린이놀이터 등의 시설도 곳곳에 세워져있다. 이것은
모두 사적 내에 있을 수 없는 시설물들이다.


일본이 효창원을 훼손하고 효창공원을 만들었다면, 해방 이후 정부는 효창운동장과 갖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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