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대자동, 연산군에게 죽임을 당한 '무풍군의 묘역'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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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대자동, 연산군에게 죽임을 당한 '무풍군의 묘역'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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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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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 대자동 일대에서 연산군에게 죽임을 당한 조선조 왕족의 묘소가 발견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고양시청 정동일 문화재 전문위원에 따르면 대자동 일대에 연산군의 금표비와 왕족 30여명의 묘소가 있는 것은 알려진 일이었으나 이곳에 묻힌 왕족들의 7부자의 비극이 전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현재 고양시 대자동에는 연산군과 관련된 유적이 곳곳에 자리해 있는데 우선 경기도 문화재로 지정된 연산군의 금표비(禁標碑)가 입구에 세워져 있다.



이 비석은 우리나라 유일의 연산군대 금표비로서 금표구역에 들어오면 목을 친다는 내용이 있어 연산군 폭정의 상징과 같이 평가받고 있는 금석문 문화재이다.















▶ 연산군에게 죽임을 당한 무풍군 이총의 묘역과 정동일 전문위원








이 금표비의 뒤편에는 연산군에게 죽임을 당한 무풍군(茂蘴君) 이총의 묘소가 있다. 무풍군은 조선조 전기의 학자이며 왕실 종친으로 태종의 아들인 온령군의 후손이며 우산군의 아들이 된다. 무풍군은 사림의 거두인 김종직의 제자이며 생육신의 한분인 고양출신 추강 남효온의 사위로 당시 사림으로 추앙받던 인물이다. 그러나 갑자사화로 먼저 무풍군이 왕손임에도 연산군의 명으로 참형을 당했고 이어 2년 후 병인사화로 부친인 우산군을 비롯한 6부자(父子)가 참화를 겪는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된다. 현재 이들 묘소 중 무풍군의 형제인 한산군의 묘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곳에 묘소가 자리해 있다.



이러한 후손들의 가슴 아픈 사연은 2000년도에 세워진 가문의 역사 비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연산군의 광기어린 폭정' 내용 표기에서는 후손들의 연산군에 대한 큰 반감을 확인해 볼 수 있다.



한편 정동일 전문위원은 현지 유적에 대한 정밀 문화재 조사를 벌인 뒤 석물, 인물적 가치를 고려하여 문화재 지정도 검토하겠다고 전했다. 아울러 연산군의 일면만 보고 지나친 동정론을 보이는 것은 역사의 진실을 왜곡할 수 있어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동일 전문위원은 연산군 금표비를 최초 발견한 보기드문 연산군 전문연구자 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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