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원래 위치 확인됐다
상태바
경복궁 원래 위치 확인됐다
  • 관리자
  • 승인 2007.09.0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선 10대 임금 연산군만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인물도






오늘 4월 6







 



 







▶ 경복궁 광화문지 및 월대 지역 전경







 







국립문화재연구소는 6일, 문화재청의 ‘경복궁 광화문 및 기타권역 복원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경복궁 광화문지 및 월대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광화문의 원래 위치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광화문은 태조 4년(1395년) 창건되어 임진왜란(1592년) 때 소실되었으나, 고종 2년(1865년) 경복궁을 재건하면서 함께
중건됐다. 이후 일제 시대 때(1927년) 조선총독부를 신축하면서 건춘문 북편(현 국립민속박물관 정문)으로 이건 되었다가,
한국전쟁 당시 피폭으로 문루가 소실(1951년경)됐다.



이후 1968년 원래의 광화문 부근에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복원하였으나 본래의 위치 및 방향과 차이가 있어, 2006년 12월
4일 ‘광화문 제 모습 찾기’ 선포식을 시작으로 전면도로 선형변경과 기존 광화문(이하 구광화문) 철거가 진행됐으며, 지난 7월
4일부터 원래의 광화문 및 월대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됐다.



연구소는 발굴조사 결과 광화문지(光化門址)와 그 남편으로 이어지는 월대(月臺: 궁전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세운 섬돌), 그리고
광화문의 동서로 연결되는 경복궁의 궁장지와 당시 조선시대 사람들이 걸어 다니던 도로(현 아스팔트 도로 밑 60~70cm)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광화문은 구광화문(1968년 복원)에서 남으로 11.2m, 서로 13.5m 떨어진 지점에서 확인됐으며,
구광화문이 경복궁의 축에서 3.75° 틀어져 있었던 반면 원래의 광화문은 경복궁의 축과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광화문은 장방형의 돌을 쌓아 만든 육축(陸築)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우진각 지붕으로 문루를 세웠다. 육축에는 3개의
무지개문을 두었는데, 이는 조선시대 궁궐 문루 중 단 하나 밖에 없는 3홍예문(三虹霓門)이다. 광화문지는 기단석 기준 동서 길이
34.8m, 남북 잔존 길이 10.2m(총14.7 m)로 전체 너비의 2/3가 확인됐다.



광화문의 중앙문은 왕이 출입하던 문으로 남편 기준 너비 500cm로 가장 넓고, 동문은 문관이, 서문은 무관이 출입하던 문으로
각각 너비 350cm로 같다.







 








 



 







▶ 월대 동편 기단 석렬







 







월대는 광화문지의 남편에 연결되어 동서 너비 29.7m,
남북 확인 길이는 8.3m로서 전체 추정 길이가 52m인 점을 감안할 때, 세종로 지하에 43.7m가 더 묻혀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월대의 좌우에는 난간석이 유실되고, 중앙 부분에는 임금이 드나드는 길인 어도(御道; 폭520㎝)의 흔적이 발견됐다.







 


저작권자 © cpn문화유산 문화재T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