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왕비의 기신제를 행하는 곳, 정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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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왕비의 기신제를 행하는 곳, 정자각
  • 이경일
  • 승인 2020.03.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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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743호
구리 동구릉 목릉 정자각 (九里 東九陵 穆陵 丁字閣)

코로나 19의 악영향으로 2020년에 예정된 조선 왕릉의 제향 행사는 잠정 연기됐다. 코로나 19의 영역이 건강뿐 아니라 문화재 전반에도 뻗쳐있는 것을 새삼 실감하며, 올해 예정된 제향 행사가 진행되기를 기대하며 조선 14대 임금 선조와 두 왕비가 모셔진 목릉 정자각을 소개하고자 한다.

 

정자각은 제향을 올리는 곳으로 으로 정()자 모양을 한 건축물이라 하여 정자각(丁字閣)이라한다. 목릉(穆陵)은 조선의 14대 임금 선조(宣祖)와 왕비 의인왕후 박씨(懿仁王后 朴氏), 두 번째 왕비 인목왕후 김씨(仁穆王后 金氏)의 능이다.

구리 동구릉 정자각(사진=문화재청)
구리 동구릉 정자각(사진=문화재청)

 

구리 동구릉에서 세 번째로 조성된 능으로 형식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봉분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이다.원래 목릉 능역에는 1600년 의인왕후의 유릉(裕陵)이 먼저 조성되었다. 이후 1608) 선조가 세상을 떠나자 선조의 능인 목릉을 건원릉 서쪽(현 헌종 경릉)에 조성하였다.

 

1630년 능에 물이 차고 터가 좋지 않다는 상소에 따라 현 위치로 능을 옮기고 유릉과 목릉의 능호를 합쳐 목릉이라 하였다. 그 후 1632년 인목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선조의 능 동쪽 언덕에 능을 조성하여 현재와 같은 능역을 이루게 되었다.현존하는 정자각은 1608년 선조의 능에 건립되었던 것을 1630년에 능을 옮기면서 이건(移建)하고, 전에 있던 의인왕후 유릉의 정자각과 합하여 설치한 것이다. 이건 후 여러 차례 건물 수리가 있었는데, 특히 1745(영조21), 1749(영조 25), 1769(영조 45) 세 차례에 걸쳐 벌레로 인한 기둥 교체가 있었다.

 

목릉 정자각은 정전 3, 배위청 2칸으로 구성된 5칸 정자각이다. 대개의 정자각 정전 측벽(側壁)에는 기둥을 하나 세우고, 기둥 중심으로 맞보를 걸어 결구(結構)하는데, 목릉 정자각은 고주(高柱) 둘을 세워 종보를 직접 받도록 한 것이 특이하다.건물의 공포(栱包)형식은 다포형식(多包形式)으로써, 전체적으로 17세기 초에 재건된 문묘 대성전 포의 구성과 유사하여 이 시기 다포형식을 연구하는데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현재 목릉 정자각은 1630년 이건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건물로, 조선왕릉 정자각 가운데 유일한 다포형식의 건물이다. 살미(山彌)의 형태나 구조가 장식화 되기 이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어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크다.

2019 조선왕릉 제향(사진=문화재청)
2019 조선왕릉 제향(사진=문화재청)

 

조선 왕릉의 제향은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주관하는 행사로 전국에 있는 후손들이 왕과 왕비의 기신제에 행하는 제사이다. 문화재청은 코로나 19의 진정 상황을 살펴 시행 여부가 다시 결정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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