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도까지 닿은 붕당정치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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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까지 닿은 붕당정치의 흔적
  • 김민석 기자
  • 승인 2020.04.21 14: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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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사진=역사문화라이브러리)
흑산도(사진=역사문화라이브러리)

 

흑산도는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에 있는 섬이다. 섬전체가 산지로 이루어진 흑산도는 멀리서 보면 산이 검게 보인다고 해서 흑산도라는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흑산도는 828(흥덕왕 2) 장보고가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당나라와 교역할 때부터 사람이 정착하였으며, 우러산군에 속하였다. 1678(숙종 4) 흑산진이 설치되어 군사적으로 활용하였다. 1969년 신안군에 속하게 되었다.

 

흑산도에도 조선시대 치열했던 붕당정치의 영향이 미쳤던 시절이 있었다. 1786년 흑산도에서는 유배객이 머무는 집의 주인들도 노론과 소론으로 나누어진 상황이었다.

 

당시 유만주가 쓴 일기인 흠영선집에는 흑산도의 상황도 기록되어 있다.

 

당시 이태중 공이 흑산도로 귀양을 오게 되었고, 섬사람 하나가 이태중을 극진히 대접하며 자기 집에 모셨다.

 

이 집은 홍계적(洪啓迪, 1680~1722) 공이 창건한 것입니다. 선생께선 노론이시니 이 집을 두고 다른 데로 가면 아니 되십니다."

 

그렇게 이태중은 그 집에서 살게 되었고, 후에 이태중과 친했던 소론의 벼슬아치가 귀양을 오게 되었다. 그는 이태공과 같은 집에서 귀양살이를 하고자 하였으나, 집주인이 격하게 반대하였다.

 

노론의 명재상인 홍 공(洪公)께서 이 집을 창건하셨습니다. 선생께선 노론이시니 제가 감히 머물러 주십사 했지만, 소론을 어찌 이 집에 들일 수 있겠습니까? 소론은 비록 이 집이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맞아 줄 집이 있을 것입니다.”

 

이태공은 집주인에게 이유를 물었다.

 

"홍공께서 이 집을 세운 이래로 계속하여 노론이 살았지 한 번도 소론이 들어온 적은 없습니다. 지금 사세事勢가 급박하니 제가 장작 한 묶음을 가져와서 이 집을 깨끗이 태워 버리렵니다."

 

이 말에 그 소론 벼슬아치는 깜짝 놀라 급히 다른 곳으로 옮겨가 살기로 했다. 이 기록만 보더라도 당시 당파싸움이 흑산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었는지 추정해볼 수 있다.

 

당시의 붕당정치는 치열해서 가문, 학벌 그리고 지역별로 차별이 심했다. 국론도 분열되고 의견도 통합되지 못해, 임진왜란 때는 대처를 하지 못했으며, 능력이 있어도 이러한 붕당의 대립으로 쓰이지 못한 자들이 많았다.

 

물론 붕당정치를 현대에서 보자면 비판과 권력의 견제라는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친 분열과 대립으로 인해 백성들이 고통받았다면 다시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일 것이다.

 

취재팀 김민석 기자

kimminseok@icp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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