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벽화묘 모습을 드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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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벽화묘 모습을 드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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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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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동화리 벽화묘의 내부 벽화 모습 / 문화재청







 










문화재청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는 4월 16일, 강원도 원주시 동화리 조선시대 벽화묘(노회신묘) 발굴현장에서 학계의 관계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회의를 개최하고 발굴조사 및 벽화의 보존처리를 진행할 예정이다.





벽화묘의 주인공은 교하 노씨(交河盧氏) 15대손인 여흥도호부사 겸 권농병마단련부사(驪興都護府使, 勸農兵馬團練副使)를 역임한 조선시대 충정공(忠正公) 노회신(盧懷愼, 1415~1456년)이다. 지난해 노씨문중으로부터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석실 내 벽화가 발견되었다는 제보에 따라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에서 긴급 현지조사를 실시한 바 있으며, 추후 정밀 발굴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문중과의 협의를 거쳐 석실에 대한 재 포장 등 임시 보호조치를 해왔다. 묘 이장 시 벽화묘의 봉분 둘레석과 석물(묘비석, 장명등, 상대석, 문인석)은 모두 충남 청양으로 옮겨가고, 현재는 벽화가 있는 석실만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벽화묘는 1456년(세조 2년)에 조성된 조선시대 무덤으로, 방형 봉분(方形封墳) 내에 앞트기식돌방 두 개가 잇대어 배치되어 있다. 석실의 각 벽체는 하나의 대형 화강암석재로 이루어져 있으며, 석실의 천장은 각각 2매의 대형 판석으로 덮여 있다. 석실 내부의 벽면과 천장에는 먹과 붉은색 안료 등을 이용하여 그린 사신도(四神圖)와 인물도(人物圖), 성좌도(星座圖)가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 묘주가 안치된 북쪽의 석실과 매장 흔적이 없는 남쪽 석실이 벽화의 구성에 있어 차이를 보이고 있다. 묘를 축조할 당시 두 석실의 천장에 성좌도와 네 벽면에 사신도를 미리 그려 넣었고, 이후 묘주를 매장할 때에는 북쪽 석실의 벽면 하단에만 12구의 인물상을 추가로 배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인물상은 벽면에 직접 묵선(墨線)으로 그린 인물의 윤곽, 손에 쥔 홀(笏), 머리에 쓴 책(?, 쓰개의 일종)과 얼굴의 채색(彩色) 등 1352년 조성된 파주 서곡리(瑞谷里) 벽화묘와 유사하게 표현되어 있어 아마도 12지신상(十二支神像)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원주 동화리 벽화묘는 밀양 고법리 벽화묘(松隱 朴翊 묘, 2000년 9월 발견)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발견된 조선시대 벽화묘로, 십이지를 표현한 인물상과 더불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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