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근대화의 힘, 최초의 여성교육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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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근대화의 힘, 최초의 여성교육기관
  • 이경일
  • 승인 2020.07.1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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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등록문화재 제3호 서울 이화여자고등학교 심슨기념관

19세기 말 조선은 근대화에 대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교육의 변화도 그중 하나로 그동안의 유교식 서당교육에서 벗어나 근대학문을 받아들임으로써 부국강병을 이루고자 한 것이다.

이화여자대학교(사진=문화재청)
이화여자대학교(사진=문화재청)

 

여성교육에 대한 관심도 증대되기 시작했으며, 조선시대 교육에서 배제되었던 여성들이 정당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개화기 여성교육의 중심에는 외국인 선교사가 있었고, 그들 중에서도 기독교계 선교사들에 의해 여성교육이 주도되었다.

 

한국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은 이화학당이다. 이화학당은 감리회 선교사 스크랜턴 부인에 의해 18865월에 개교되었다. 처음 학생 1명으로 시작하였지만, 이후 7명으로 늘었고, 1888년에는 18, 1893년에는 30명으로 늘었다.

 

점점 늘어가는 학생 수에 맞춰 신식건물을 지었다. 1918년에는 고등과와 보통과를 분리하여 여자고등보통학교와, 이화여자보통학교로 각각 개교하였으며, 1925년 이화여자전문학교로 명칭을 바꿨다. 한국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이 전문학교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건물 내부(사진=문화재청)
건물 내부(사진=문화재청)

 

국가등록문화재 제3호 서울 이화여자고등학교 심슨기념관은 이화여자고등학교 캠퍼스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건물로, 1915년 미국인 사라 J. 심슨(Sarah J. Simpson)이 위탁한 기금으로 세워졌다. 지하 1, 지상 3층의 건물로 6.25전쟁 때 붕괴되었다가 1960년대 초 복구하였는데, 남쪽 건물의 외관은 처음 건축할 때의 모습으로 복원하였으며, 뒷부분은 현대적인 외관으로 처리하였다.

 

외벽을 붉은 벽돌로 지은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근대 건물로 학교건축의 초창기 서양 건축양식을 도입하였다. 현재는 이화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박물관 내부에 이화학당의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어 당시 교육 현장의 모습을 느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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