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하나가 지는 것으로 천하가 가을인 것을 알다.(一葉落天下知秋)”라고 했던가.
낙엽 속에 익어가는 가을, 어디론가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은 충동의 계절이다.
온 세계가 코로나라는 괴질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최악의 사태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어 사람들의 심적 불안이 적지 않다.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좋은 사람들과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오랜 벗들과 반갑게 손을 잡고 부둥켜안기도 하고, 정겹게 모여앉아 주거니 받거니 정을 담은 술잔을 기울인 때가 언제였나 싶다.
서로 만나 대화로 소통하는 것은 옛일이 되었고, 청중과 박장대소하며 신명나고 감동스런 대면 강연과 여행도 사라진지 오래이다. 요즘은 입은 마스크로 닫고 서로의 관계는 거리두기, 강연과 교육도 무미건조한 인터넷 강의, 일가친지도 만나는 것을 삼가 하라는 비대면을 강조하는 안타까운 세상, 창살 없는 감옥이 따로 없다. 혹시 나와 내 가족, 내 직장에 확진자가 나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답답하여 사람들마다 신경이 예민하다.
온 세계가 병들어 있는 답답한 이때 대안은 없는 것일까? 바로 책속에서 길이 있다. 그 속에서 여행도 하고 힐링하는 것이 어떨까?
특히 가을은 높고 푸른 하늘에 서늘한 바람까지 일어 묵혀둔 고전(古典)을 꺼내 읽고, 미뤄둔 고적여행을 떠나 몸과 마음에 살이 오른다면 그 이상의 행복은 없을 것 같다.
밤새 등불 아래서 책 읽기 좋다하여 등화가친(燈火可親)이라 일컫지만 사실 가을은 여행하기에 더 좋은 계절이다. 아름다운 산천자연의 승경을 즐기는 사람들은 한가로이 책장이나 넘길 여유가 없는 것일까. 그래서인지 사계절 중 가장 책을 읽지 않는 계절이 가을이라는 통계치도 있다. 그러나 책을 멀리한다 해서 나무랄 일은 아니다. 여행도 진정한 독서의 하나이니까.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 했다. 소동파는 “만 권의 책을 읽어야 비로소 신명(神明)과 통한다(讀書萬卷始通神)”고 했고, 동양학자 조용헌은 “만리를 여행해야 마침내 제대로 분별을 할 수 있다(旅行萬里終分別)”고 했다. 또 “한국 불가에서는 수행의 단계로, 처음에 독서(경전공부) 10년, 그것이 끝나면 참선 10년, 그다음은 여행 10년이라는 과정을 설정하고 있다. 불가에서는 여행을 가리켜 ‘만행(萬行)’이라고 하는데, 수행에서 만행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여행하면서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가지가지의 사람들의 삶과 명산대천을 접하면서 인간은 완숙의 경지에 접어들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추사는 소치의 그림을 보고서 “만일 천리의 여행을 한다면 비로소 발전이 있을 것이다.”라고 했고, 이후 소치는 삼천리강산을 여행하면서 진경산수의 대가가 된 것이다. 독서를 기초로 하여 여행에서 완성된다는 말이다. 독서와 여행이 조화를 이루면 여행은 걸어 다니면서 하는 독서요,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인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세계는 한 권의 책이며, 여행자들은 그 책의 한 페이지를 읽었을 뿐이다.”라고 했고, 카뮈는 “여행은 무엇보다도 위대하고 엄격한 학문과 같은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책과 여행은 지식과 지혜를 얻고 감성의 함양과 힐링은 물론 지나온 내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통찰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여행과 독서의 이로움은 그 속에서 공자와 사마천, 세종대왕, 이순신은 물론 소크라테스를 비롯해 셰익스피어, 괴테, 헬렌켈러 등 누구와도 만나 소통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가까운 친구로 교유할 수도 있다. 처음 책을 읽을 때에는 한 사람의 친구를 알게 되고, 두 번째 읽을 때에는 옛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독서와 여행에서는 간접경험을 통해 지식이나 교양을 얻고 생각을 바르게 가질 수 있는 길잡이를 찾는다. 뿐만이 아니라 교훈과 인간 도리, 지혜를 배워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최고의 즐거움은 독서(至樂莫如讀書)’라 했듯이 책과 여행은 나를 즐겁고 행복하게 해 준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때문에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했고, ‘책 속에 길이 있다’, ‘책은 말 없는 스승이다’ 등의 명언들은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얼마나 유익한지에 대해 말해준다.
‘사람을 젊게 만드는 것이 둘 있다. 하나는 사랑이요, 또 하나는 여행이다. 젊어지기를 원하는가? 될수록 여행을 많이 해라’는 서양 속담도 있다. 옛사람들은 세 가지 기쁜 소리로 아이 우는 소리, 다듬이 방망이 소리, 책 읽는 소리를 꼽았고, 이 중에 책 읽는 소리를 최고로 쳤다.
가을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인문학적이다. 묵객들은 예술과 철학에 취할 것이고, 연인들은 사색과 고독에 취하고 싶어 할게다. 경제가 불황일 때면 미국은 영화관, 일본은 서점, 한국은 쇠주 한잔할 수 있는 삼겹살집이 북적댄다던데 이제는 이도 옛말이다.
인문고전 독서로 천재가 된 아인슈타인은 ‘술 대신 인문고전에 취하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을 했다는데.
바야흐로 언택트 시대,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컨택트해야 할 것은 ‘책’ 이다. 좋은 계절 가을. 한잔 술이 아닌 한 권의 책으로 몸을 덥혀가면서 혼책의 취기를 느껴봄은 어떨지.
글 : 대동문화재단 대표 조상열